외환딜러의 세계는 징크스가 많기로 유명하다.

환율이 오르라고 컴퓨터 모니터아래에 라이터를 켜는 딜러가 있는가 하면
환율 하락을 바라지 않는 마음에 선인장을 두는 사람도 있다.

내려오면 따가우니 내려오지 말라는 뜻이다.

국물있는 음식을 피하는 것은 일반화돼있다.

화장실에 자주 가지 않기 위해서다.

모니터에서 한시라도 눈을 떼면 시장흐름을 놓칠까봐 그런다.

체이스맨해턴 은행의 외환딜러인 이성희(34).

그는 격전이 예상되는 날이면 어김없이 파란색 계통의 넥타이를 매고
나온다.

냉정함을 잃지 않기 위해서다.

외환딜링은 그에게 직업이 아니라 일상사가 돼 버렸다.

때로 "오늘은 거래를 쉬어야지"하면서도 모니터를 보곤 어느새 거래에
뛰어든다.

진정한 프로만이 가질 수 있는 승부욕이랄까.

그는 시장이 한방향으로 움직일때 반대거래를 하는걸 즐긴다.

남들이 팔아치울때 그는 달러화를 사들인다.

그래야만 크게 "먹을 수 있다"는게 그의 생각이다.

그렇다고 대세를 벗어나서 거래하는건 아니다.

흐름은 충분히 타되 원.달러 환율의 변동성을 적절히 활용하는 것(레인지
트레이딩)이다.

달러당 2원의 손실을 볼때는 즉각 손절매(loss-cut)에 나선다.

그게 체이스맨해턴의 룰이다.

그러나 이익을 낼 땐 10원까지도 기다린다.

그래서 3백만~4백만달러까지도 벌어봤다.

하루에 40억원가량의 이익을 낸 적도 있다는 얘기다.

물론 2백만달러까지 잃은 날도 있지만.

그의 딜링기법은 특이하다.

시장 내.외부의 정보보다는 시장의 힘을 중시한다.

이를테면 5천만달러를 샀는데도 환율이 올라갈 움직임이 보이지 않으면
즉각 손절매를 하는 방식이다.

문성진 산업은행 외환딜러는 그를 "순발력이 빠르고 승부욕이 굉장히 강한
딜러"로 평가했다.

이 지배인은 서울 외환시장에서 "3대 큰 손"중의 한 사람으로 통한다.

이 지배인에게 뉴 밀레니엄은 도전과 희망의 천년이다.

그에겐 오래된 꿈이 있다.

"원.달러 딜러중 최고가 되는 것" 97년 3월 산업은행에서 체이스맨해턴
은행으로 옮길 때 품었던 꿈이다.

어차피 프로의 세계에서 살기로 작정한 이상 반드시 도달하고픈 고지다.

최고란 딜링을 통해 돈을 가장 많이 버는 것일 수도 있고 연봉을 가장 많이
받는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는 "최고가 됐다"는 자기만족을 오래동안 누리고 싶어하는 것
같다.

딜러로서의 자기완성이다.

그런 면에서 아직은 부족하다고 그는 털어놓는다.

정보화 사회에 필요한 지식을 더 쌓고 싶고 해외에서의 딜러경험도 갖고
싶다고 한다.

"2000년에도 정부의 개입과 시장의 달러화간에 한판 싸움이 있을 겁니다.
원화가치가 반드시 절상흐름을 탈 것이라고 볼 수만은 없습니다. 엔화가
어떻게 움직이느냐, 한국의 경상수지 흑자가 계속되느냐등 의외로 큰 변수가
많죠"

그는 오늘도 격전을 벌이기 위해 파란 넥타이를 맨다.

뉴밀레니엄의 아침은 그에게 즐겁기만 하다.

< 이성태 기자 steel@ked.co.kr >


( 한 국 경 제 신 문 2000년 1월 4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