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중.일 3국간 경제협력의 역사는 크게 단절기 해빙기 도약기의 세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단절기는 근세 초반에서 냉전기까지를 포함한다.

근세 이전에는 3국간 교류가 비교적 활발했다.

중국 산둥성에서 발견되는 백제촌의 흔적, 백제 도자기의 일본 전수,
장보고의 서해 해상무역 등이 그 예다.

그러나 근대 개화기를 거쳐 냉전이 이어지면서 3국은 오랜 기간 단절의
역사를 겪었다.

특히 한국과 중국의 쇄국정책, 일본의 제국주의 팽창과 2차 세계대전 발발,
그리고 냉전시대의 개막은 3국간 교류를 거의 중단 시켰다.

다시 교류의 물꼬를 튼 것은 지난 1965년 한일 국교정상화가 이뤄지면서다.

이 때부터 90년대 중반까지 해빙기가 지속된다.

한일간 화해무드에 이어 1972년에는 일본과 중국도 국교정상화를 선언했다.

1978년 12월에는 중국이 개혁.개방 정책을 표방, 경협의 전환점을 불러왔다.

덩샤오핑이 주도한 중국의 개혁.개방정책은 동북아 국가들이 정치적 입장을
떠나 경제협력에 나서는 계기로 작용했다.

이듬해인 1979년 미국과 중국이 수교협정을 맺은 것도 동북아 지역의 냉전
분위기를 희석하는데 한 몫을 했다.

1992년에는 한국과 중국이 국교를 맺었다.

1990년대 후반부터는 3국 관계가 비약적으로 성장하는 도약기로 볼 수 있다.

지난 97년 아시아 경제위기로 협력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낀 3국 정상들은
연이은 상호방문을 통해 동북아 협력의 분위기를 한껏 고조시켰다.

98년 후반기 김대중 대통령의 방중 및 방일을 시작으로 같은해 중국의
장쩌민 주석이 일본을 방문했다.

지난해에는 이같은 무드가 절정으로 치달았던 한해였다.

7월에 오부치 게이조 일본 총리가 중국을 방문했고 넉달 뒤인 11월말 필리핀
마닐라에서 "아세안+한중일 3국 정상회담"이 열렸다.

동북아 경협을 상징하는 이 회담이 개최됨에 따라 한.중.일 3국간 단일
경제권 구축을 위한 행보가 더욱 빨라지고 있다.

< 고성연 기자 amazingk@ked.co.kr >

( 한 국 경 제 신 문 2000년 1월 3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