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기택 < 중앙대 교수 / 경제학 >

드디어 새 천년이 시작됐다.

지구인은 축제 속에 태평양의 날짜변경선에서부터 시작해 시간대 별로 새
천년을 맞았다.

그러나 마음 편히 맞은 새 천년은 아니었다.

컴퓨터 오작동, 소위 Y2K 문제로 인한 대형사고발생의 우려 때문이었다.

다행히도 아직까지 보고된 대형사고는 없다.

전기 가스 수도공급 통신 및 항공기 이착륙은 평시와 같이 정상적으로
이뤄졌다.

민간기업들 역시 큰 문제는 없는 듯하다.

금융기관은 문을 열어 보아야 알겠지만 외국의 경우를 보면 안심해도 좋을
듯 싶다.

Y2K 문제가 예상보다 심각하지 않은 것은 세계 각국의 철저한 대비 때문이다

언론의 역할도 컸다.

전세계 언론은 과거 수년간 Y2K 문제로 인한 대형사고 발생 가능성을 수없이
지적해 왔다.

전 세계가 Y2K 문제 해결을 위해 투자한 금액이 3천억 달러나 된다고 한다.

말 그대로 유비무환인 셈이다.

그러나 1일자 뉴욕타임즈가 지적했듯이 그동안 Y2K 문제는 전체적으로
과장됐던 감이 있다.

물론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다.

지난주 만해도 한경은 Y2K 관련기사를 두 차례나 1면 머릿기사로 보도했다.

다른 언론들도 마찬가지였다.

일반 국민의 막연한 불안심리가 증폭됐다.

많은 사람들이 통장을 정리하고, 현금을 인출하고, 수돗물을 받아놓는 등
법석을 떨었다.

부탄가스 라면 등 비상용품의 사재기도 많았다.

마치 전쟁이 일어 날 것처럼 행동한 것이다.

소위 Y2K 증후군이다.

다행스럽게도 앞으로 며칠후면 Y2K라는 단어는 영원히 사라질 것이다.

30일자 한경은 정부의 이른바 "밀레니엄 사면"을 1면 머릿기사로 올렸다.

금융기관 거래 신용불량자 1백6만명을 구제한다는 내용도 포함되었다.

신용불량자를 정부의 사면에 포함시킬 수 있느냐에 대해서는 그동안 법적
경제적 논란이 많았던 부분이다.

그래서 그런지 한경은 이와 관련해 아무런 논평없이 정부 발표내용만 그대로
보도했다.

IMF사태로 인해 불가피하게 1천만원 이하의 대출금을 연체한 사람이
대출금을 상환하면 그 즉시 신용불량자 명단에서 삭제해 새 출발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정부 조치는 적절하다고 생각될지 모른다.

그러나 어려운 상황에서도 어떻게든 대출금을 상환해 신용을 지켜온
사람들이 더 많다.

이런 고객들과 그렇지 않은 고객들을 어떻게 차별해야 하는가는 전적으로
금융기관이 판단할 문제다.

1일자 4면을 보면 재경부장관과 금감위원장이 종무식에서 관료들에게
"시장간섭 말라"고 강조한 점이 보도됐다.

금융기관의 영업활동에 제일 중요한 자료는 대출자를 비롯한 투자대상자의
신용정보이다.

금융기관이 고객의 신용정보를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수익이 크게
달라진다.

즉 고객의 신용정보는 금융기관의 또 다른 장사 밑천인 셈이다.

그런데 정부 한쪽에서는 이같은 장사 밑천을 박탈하고 다른 쪽에서는
시장간섭 말라니 논리적인 이해가 힘들다.

"행동 따로, 말 따로"인 셈이다.

한경은 새해 첫 신문의 1면 머리기사를 "기술 헤게모니를 잡자"로 장식했다.

21세기에 한국이 세계의 중심국가군에 합류하기 위해서는 과학기술의 창달이
필요충분조건이라는 것이다.

정보화시대, 지식기반경제에서는 단순한 물질적 자원은 성장의 원천이 될
수 없다.

세계경쟁에서 살아 남기 위해서는 부단한 과학기술개발을 통해 동태적
우위를 지속적으로 창출해야한다는 것이다.

같은 날 3면에는 지식정보화의 진전에 따른 산업구조의 변화모습을 그리면서
정보통신 기술이 국운을 좌우한다는 기획기사도 마련했다.

또 "한국경제 비전21"이라는 별지에서는 새 세기를 이끌 신사고 "밀레다임"
을 정의했다.

문화적 다원주의에 바탕을 둔 사회전반에 걸친 디지털혁명이 밀레다임을
구성한다는 것이다.

모두 맞는 말이다.

한경이 새해 화두로서 "테크노 코리아"를 선정한 것은 아주 적절한 선택이다

그 중요성을 강조한다고 해서 과학기술의 발달이 저절로 이뤄지는 것은
물론 아니다.

이를 위해서는 개선돼야 할 과제들이 수 없이 많다.

단골 메뉴 중 하나는 창의력을 키우는 교육개혁이다.

과거에 수 없이 논의되어 왔지만 명확한 해답은 없다.

과학기술 발전과 직접적으로 관련된 제도중 하나는 특허제도이다.

공정한 특허제도의 확립없이는 과학 기술발달은 불가능하다.

공정한 심판없이 운동 경기하는 것과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특허제도는 선진국에 비해 심사인력을 비롯한 모든 면에서 많이
뒤떨어져 있다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다.

시급한 개선이 요구되는 부분이다.

새해 화두를 테크노코리아로 잡은 한경에서는 과학기술 발전을 위한 장.단기
과제들에 대한 심도 깊은 분석과 개선방안을 계속해 제시해 주기 바란다.

새해들어 한경은 신문의 얼굴인 제호를 새로 디자인했다.

사실 과거 제호는 광고지 전단같이 가벼운 감이 없지 않았다.

변경된 제호는 훨씬 안정되고 세련돼 보인다.

제호의 변화와 더불어 신문내용에서도 보다 독자중심적인 변화가 있기를
기대한다.

< hongecon@hotmail.com >

( 한 국 경 제 신 문 2000년 1월 3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