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과 사람, 상품과 서비스, 국제자본에는 더 이상 국경이 없다.

이익이 있는 곳이면 세상의 모든 것이 다 몰린다.

"월가의 큰손" 조지 소로스가 지적했듯 경제적 측면에서 국경은 존재하지
않는다.

국경은 단순한 정치개념일 뿐이다.

자본과 상품 서비스는 국경을 초월해 자유롭게 이동한다.

세상은 지금 자본과 상품의 탈국경화 시대다.

이를 주도하는 세력은 국제 금융자본이다.

19세기 중반만 해도 산업자본의 무역거래를 지원하던 금융자본은 1970년대
"오일머니"를 바탕으로 세계 금융시장의 핵심세력으로 부상했다.

금융자본은 1990년대 들어 통신수단의 급속한 발전과 파생금융상품 등
첨단 금융상품의 개발로 "규모"라는 힘에 "속도"와 "정교함"이라는 무기까지
갖게 됐다.

1997년 발생한 세계 금융위기는 각국 정부조차 이들 금융자본을 강제할 힘이
없음을 여실히 보여줬다.

경제위기 후 금융자본의 활동영역은 더욱 넓어졌다.

투기대상을 찾아 헤매는 국제금융자본은 외환위기 후 국경을 초월한
기업인수합병(M&A)을 가속화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이런 투기성 금융자본(국제핫머니)은 급격히 증가하고 있다.

지난해 국제 외환거래 규모는 하루 평균 1조6천억달러로 2~3년 사이에
3천억달러 이상 늘어났다.

이중 2%만이 무역결제와 관련된 부분이고 나머지는 투자이윤을 목적으로
움직이는 포트폴리오 투자분이다.

특히 공격적 단기투자 자본으로 헤지펀드로 불리는 국제핫머니는 외환 주식
원자재 등 대상을 가리지 않고 세계를 휘젓고 다닌다.

국제컨설팅 기관인 KPMG가 내놓은 자료에 따르면 이런 헤지펀드의
자산규모는 1990년 2백억달러에 불과했다.

그러나 1996년에 1천7백억달러로 불어났고 오는 2006년에는 1조7천억달러로
증가할 전망이다.

영향력은 계속 확대되고 있으나 이들이 자체적으로 안고 있는 "불안정성"은
해소되지 않고 있다.

헤지펀드는 금융기관 상호간 차입이나 파생상품 거래를 통해 막대한
차입자금을 운용하고 있다.

정확한 집계는 나와있지 않지만 헤지펀드의 운용자산 규모는 순자산의
2천~5천%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헤지펀드의 움직임을 따라 그의 10배에 달하는 국제자금들이 움직인다.

전세계를 뜨겁게 달구고 있는 증시통합화 바람도 지구촌을 탈국경시대로
변모시키고 있다.

증시통합은 곧 국제금융시장의 개방화다.

증시통합은 헤지펀드뿐 아니라 소규모 개인자금들도 국경없이 움직일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됐음을 의미한다.

미국의 장외거래시장인 나스닥은 올해 안에 유럽과 일본을 잇는 글로벌증시
체제를 구축할 예정이다.

뉴욕증권거래소(NYSE)도 유럽 3개국, 아시아 3개국, 북미 3개시장을 잇는
"G-9"프로젝트를 진행중이다.

나스닥의 글로벌증시는 올 상반기 말이면 그 모습이 구체적으로 드러난다.

나스닥은 금년 상반기중 런던에 "나스닥 유럽"을, 오는 6월께는 일본에
"나스닥 재팬"을 설립하고 이들을 인터넷으로 묶어 24시간 문을 여는
주식시장을 만든다는 원대한 프로젝트를 진행중이다.

한국과 홍콩 싱가포르 중국 등 개별국들도 나스닥 글로벌증시에 연결된다.

빠르면 오는 2월부터 홍콩증시에 인텔 마이크로소프트(MS) 등 나스닥의
7개 대표종목이 상장되는 것도 증시통합화의 일환이다.

한국 인터넷기업 두루넷이 지난해 나스닥에 직상장된 것도 탈국경화 증시의
한 단면이다.

나스닥과 치열한 시장경쟁을 벌이고 있는 미 뉴욕증권거래소(NYSE)도
최근 나스닥과 토론토증시(이상 북미지역)와 런던 파리 프랑크푸르트(유럽),
싱가포르 홍콩 일본(아시아) 등 세계 주요 9개 증시를 엮는 "G-9"이란 이름의
"글로벌 증시" 구축계획을 추진중이다.

NYSE는 이를 위해 이달중 유럽 거래소들과 현지에서 합동회의를 개최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금융연구원의 최공필 박사는 "단기자본거래를 규제하자는 움직임도 없지는
않지만 제스처에 불과하다"며 "앞으로 투자이윤을 쫓아 국경을 허무는
국제자본거래는 더욱 확대될 것"으로 내다봤다.

21세기 세계경제의 키워드는 "탈국경"을 지나 "무국경"이 될 것이다.

< 박수진 기자 parksj@ked.co.kr >


( 한 국 경 제 신 문 2000년 1월 1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