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폿펀드를 제발 좀 없애주십시요"

투자신탁(운용)의 펀드매니저들이 "스폿펀드 소멸론"을 들고 나오고 있다.

펀드매니저들이 스스로 운용하고 있는 스폿펀드를 없애라고 요청하는 것은
극히 이례적인 일이다.

상식적으로는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의 범주에 속한다.

자신의 손발을 자르는 것과 비슷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펀드매니저의 속내를 들어보면 "스폿펀드는 없어져야 한다"는 주장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스폿펀드들이 3개월 또는 6개월마다 돌아오는 만기때 주식시장을 뒤흔들어
놓기 때문이다.

27일 투신(운용)사들이 5천79억원어치의 주식을 내다팔 수밖에 없었던
이유도 바로 스폿펀드 때문이었다.

한 펀드매니저는 "금융감독원이 이런저런 규제를 하는데 스폿펀드 판매금지
는 왜 안하는지 모르겠다"고 꼬집었다.

그는 "향후 주가흐름을 봐서는 주식을 사야 하는데도 스폿펀드의 상환
때문에 주식을 팔아야 했다"며 "자신의 시장관과 다르게 주식매도 주문을 낼
때 왜 펀드매니저가 됐나를 생각했다"고 씁쓸해 했다.

다른 회사 펀드매니저도 "펀드매니저 생활 10년만에 올해말처럼 어렵기는
처음"이라며 "스폿펀드는 정말로 없어져야 투자신탁업계 뿐만 아니라 주식
투자 풍토가 건전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스폿펀드가 상환되고 새로운 펀드가 만들어지면서 한쪽에서는 주식을
팔고 다른 쪽에서는 주식을 사는 일이 한달이상 계속되고 있다"며
"펀드매니저는 매니저가 아닌 주문내는 로보트로 전락한 기분"이라고 털어
놓았다.

펀드매니저의 불만은 다른 매니저에게로 계속 이어졌다.

"증권사 직원들은 사상 최대의 호황을 만끽하며 연말에 호화판 망년회다
해외여행이다 해서 떠들썩한데 펀드매니저들은 이렇다할 송년회조차 하지
못하고 있다"(K 매니저).

"유통물량이 거의 없는 정보통신주 중심의 주가양극화가 심화되면서 펀드
수익률이 종합주가지수 상승률을 쫓아가기 힘들게 됐다. 수익률이 낮다는
고객의 항의전화에 시달리랴, 스폿펀드 상환하랴 하면서 몸과 마음이 모두
지쳐버렸다"(P 매니저).

펀드매니저들의 이같은 불만은 제꾀에 제가 넘어가버린 자가당착이란 측면이
없는 것은 아니다.

회사가 영업을 위한다면서 스폿펀드를 만들 때 이렇다할 반대를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일부 매니저들은 스폿펀드에서 "발군의 실력"을 발휘함으로써 몸값을
올리려고 한 것도 사실이다.

스폿펀드가 없어지기 위해선 금감원의 규제를 들먹이기 전에 스스로도
거부하는 몸짓을 보여야 한다는 것이다.

< 홍찬선 기자 hcs@ked.co.kr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12월 28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