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5년 어느 날 당시 인텔(Intel)의 회장이었던 앤드루 그로브(Andrew
Grove)는 소니의 이데이 노부유키 사장과 저녁을 함께 들면서 소니가 다시
자체상표를 갖고 PC사업에 진출할 것을 제안한다.

이미 그 이전에 PC분야에서 자체상표를 키우는 데 실패한 바 있는 소니는
당시 애플컴퓨터나 델컴퓨터를 위해 PC를 생산하고 있는 정도였다.

그로브 회장의 영향을 받아서인지 소니는 바로 그 이듬해인 96년 바이오
(Vaio) 라는 이름을 가진 비교적 비싼 데스크톱 모델 세가지를 내놓는다.

그런데 97년 처음으로 데스크톱 PC의 값이 1천달러 이하로 떨어지기
시작한다.

그러나 원가가 비싸고 판매량이 적어 가격경쟁을 할 수 없는 소니의 바이오
PC는 고급PC시장에 머무를 수밖에 없었다.

소니는 98년에야 간신히 1천 달러 미만의 PC를 내놓는다.

바로 이즈음 이데이 사장은 컴퓨터부문의 고위경영자들에게 "소니 스타일"의
컴퓨터를 만들라고 지시한다.

그것은 다름 아닌 소니의 유명한 TV나 워크맨 그리고 디지털카메라 만큼
독특한 디자인의 소니 PC를 만들라는 명령이었다.

이 프로젝트를 추진한 소니의 엔지니어들은 소니 스타일의 PC는 컴퓨터이기
이전에 먼저 멋진 개인장식품, 즉 훌륭한 패션제품이어야 한다고 결론을
내린다.

그리하여 이들은 컴퓨터 본체를 기존처럼 플라스틱이 아닌 마그네슘 합금
플레이트에 넣은 아주 얇은 노트북 컴퓨터를 설계하기로 결정한다.

소니의 엔지니어들은 97년 작고 귀여우며 멋스러운 바이오 505 노트북을
개발하는데 성공한다.

소니는 이 개발과정에서 결정적인 순간에 기능보다 패션을 더 중시했다고
하며 결과적으로 소니의 이러한 선택은 매우 잘한 일이었다.

왜냐하면 PC의 기능보다 패션에 더 관심에 많은 고객의 수가 점점 더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바이오 505가 시장에 처음 나온 이후 소니는 꾸준히 제품을 개선하여 이제는
초기의 모델과 두께는 똑같으면서 8GB 하드드라이브를 갖춘 고급기종도
생산하고 있다.

바이오가 미국시장에 들어오고 나서 두 달이 지난 98년 6월 애플컴퓨터도
역시 기능보다 패션성이 더 강조된 아이맥(iMac)을 내놓는다.

그리고 아직도 PC의 껍데기색깔은 베이지색이 많지만 이제는 색깔과 모양도
다양해지고 있다.

패션제품으로서의 PC라는 개념이 본격적으로 정립되고 있는 것이다.

< 유필화 성균관대 경영학부 교수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12월 23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