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은 망해도 기업주는 산다"

"부자 망해도 3년은 간다"라는 말은 기업이 번 돈의 일부가 정상적인 기업
활동이 아닌 기업주 개인 주머니에 채워지는 현상을 빗댄 말이다.

이때 망하기 전 기업의 회계장부는 조작되기 일쑤다.

따라서 투자자 등 회계정보이용자에게 비춰지는 이들 기업의 신뢰성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나아가 종종 불투명한 회계와 수반되는 기업 부의 기업주로의 유출은
결국 기업의 경쟁력을 약화시켜 기업의 도산을 가져올 수도 있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불투명한 회계,즉 회계장부의 조작이 우리 사회에 여러
폐해 현상을 초래한다는 점이다.

첫째, 회계장부의 조작을 통한 비자금의 조성은 계층간 위화감을 조성한다.

예를 들어 일부 부유층이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해외 고급 부동산이
과연 떳떳하게 번 개인 돈으로 사들인 것일까.

우리나라 경제규모에 비해 지나치게 발달한 향락산업도 마찬가지다.

고급 술집에서 지불되는 고액의 술값이 과연 떳떳한 고객의 월급 혹은
기업의 투명한 접대비 내에서 지출되는 것일까.

질문의 답을 찾다보면 위화감을 느끼지 않을수 없는 것이다.

둘째, 불투명한 회계는 우리 사회에 부조리악습을 조장한다.

한보 기아 대한생명 등 최근 2~3년새 부실화된 대기업을 해부하다 보면 어김
없이 터져 나오는 문제가 당해기업 최고 경영층의 불법적 로비였고 그와 관련
된 일부 고급관료는 철창행 신세를 지기도 했다.

자본주의 경제에서 이익집단의 정상적인 로비활동은 일견 당연한 것이나
문제는 막대한 금액의 뇌물이 수반될 수밖에 없는 불법적 로비다.

이때 불법적 로비자금이 최고 경영자 대주주 개인 주머니에서 나오는 것은
아니다.

이는 회계장부의 조작을 바탕으로 기업의 금고에 보관되어 있던 비자금의
일부다.

셋째, 비자금 조성을 위한 회계장부의 조작은 기업경영을 부실화시켜
때로는 공공시스템을 마비시키기도 한다.

예를 들어 성수대교의 붕괴, 여름 장마철 하수시스템 마비 등은 하도급자
로부터의 리베이트 수뢰, 불량 원자재 사용, 가공인물에의 임금지급 등을
통해 회계장부상의 공사원가 지출액을 실제보다 과다하게 계상하여 그 차액을
비자금으로 확보하는 건설업체의 비정상적 관행의 결과라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이렇게 불투명한 회계는 기업의 경쟁력 약화를 초래함은 물론 경제적
위화감을 조성하고 우리 사회에 팽배한 부조리를 조장하며 때로는
공공시스템의 마비 현상을 부르기도 한다.

또 인재에 의한 무고한 인명의 희생까지 초래하는 대형 사건의 이면에도
불투명한 회계, 즉 회계장부의 조작이 도사리고 있다.

지난 10월 국제투명성기구(Transparency International)에서 발표한
부패지수 순위에서 우리나라가 세계 99개 국가 중 50위를 차지했다.

뇌물공여지수에서는 조사 대상 19개국 중 중국 다음의 뇌물제공 국가라는
사실은, 그 조사 결과의 신뢰성 여부를 떠나 겸허하게 그 의미를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이렇게 경제 전반의 취약성과도 연결되어 있는 불투명한 회계가 팽배했던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

미시적으로 회계제도의 취약점 혹은 자본시장의 파수꾼(watchdog)으로서
회계감사인의 도덕적 불감성 등을 거론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필자는 60년대 개발독재 이후 만연된 경제의 불공평성(unfairness)
혹은 부정(injustice)에서 불투명한 회계의 근본적인 출발점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위정자들은 경제의 불공평성 혹은 부정을 덮어둔 채 사회를 운영하고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해 관료조직 기업주 등 사회 상부계층을 적당히
부패시켜야했다.

기업의 회계 담당인원, 회계기준 제정기구, 회계감사인 등 회계관련
종사자들은 기득권 계층의 이해에 맞춰 동원된 심부름꾼에 지나지 않았다.

과연 회계장부를 조작하고 비자금을 조성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든 "몸통"
과 단지 이를 자의반 타의반으로 충실히 이행한 "깃털"중에 회계 불투명성의
주범은 누구일까.

김호중 < 건국대 교수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12월 16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