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초위기 '민자 SOC'] '해외 실패사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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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4년 5월6일 유럽은 온통 축제무드에 휩싸였다.
영국과 프랑스를 잇는 유로터널의 역사적인 개통식이 열린 날이다.
금세기 최대의 토목공사인 이 해저터널은 세계 최첨단기술이 총동원된
기술혁신의 결정체였다.
육로로 유럽을 통합한다는 상징성까지 갖고 있었다.
그러나 환호도 잠시 뿐.
유로터널은 개통 1년만에 심각한 재정악화 속에 파산위기에 직면했다.
유로터널의 1년간 손실은 3억8천6백90만파운드(6억5백40만달러)에 달했다.
하지만 매출액은 3천60만파운드(4천7백90만달러)에 불과했다.
유로터널이 "세기적 애물단지"가 돼버린 가장 큰 이유는 공사비의 증가와
이에 따른 이자부담 때문.
86년 착공 다시 4백90억프랑으로 예상된 공사비는 그뒤 1천30억프랑으로
두배이상으로 불어났다.
개통이 당초 계획보다 1년이나 지연됐고 수익성도 예상에 미치지 못했다.
여기에다 금융기관에서 빌려쓴 7백50억프랑의 이자가 눈덩이처럼 불어나
올해 갚아야할 이자(50억프랑) 조차 상환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유럽의 다른 국가들까지 나서서 지원, 간신히 명맥은 유지하고 있지만
유로터널로 돈을 벌겠다는 생각은 포기한지 오래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12월 9일자 ).
영국과 프랑스를 잇는 유로터널의 역사적인 개통식이 열린 날이다.
금세기 최대의 토목공사인 이 해저터널은 세계 최첨단기술이 총동원된
기술혁신의 결정체였다.
육로로 유럽을 통합한다는 상징성까지 갖고 있었다.
그러나 환호도 잠시 뿐.
유로터널은 개통 1년만에 심각한 재정악화 속에 파산위기에 직면했다.
유로터널의 1년간 손실은 3억8천6백90만파운드(6억5백40만달러)에 달했다.
하지만 매출액은 3천60만파운드(4천7백90만달러)에 불과했다.
유로터널이 "세기적 애물단지"가 돼버린 가장 큰 이유는 공사비의 증가와
이에 따른 이자부담 때문.
86년 착공 다시 4백90억프랑으로 예상된 공사비는 그뒤 1천30억프랑으로
두배이상으로 불어났다.
개통이 당초 계획보다 1년이나 지연됐고 수익성도 예상에 미치지 못했다.
여기에다 금융기관에서 빌려쓴 7백50억프랑의 이자가 눈덩이처럼 불어나
올해 갚아야할 이자(50억프랑) 조차 상환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유럽의 다른 국가들까지 나서서 지원, 간신히 명맥은 유지하고 있지만
유로터널로 돈을 벌겠다는 생각은 포기한지 오래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12월 9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