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정 당시 검찰총장의 집무실에 들어가 "사직동팀 최종문건"을 가져온
박시언씨는 현 정권의 실력자들과 친분이 두터운 "뛰어난" 로비스트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지난 8월 옷로비 청문회 때도 한나라당 의원들에 의해 최 회장 구명
로비의 핵심인물로 지목되기도 했다.

박씨가 신동아그룹과 인연을 맺게 된 것은 지난 98년 3월.

최 회장의 외화 해외도피 수사가 시작되자 최 회장이 그를 그룹 비상근
총괄부회장 겸 대한생명고문으로 앉힌 것.

실제 그는 이번에 김 전총장의 집무실에서 문제의 문건을 복사해 신동아그룹
측에 전달하는 등 최 회장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박씨는 전남 해남 출신으로 목포고를 나와 공병장교로 베트남에서 9년간
근무했다.

72년 미국으로 건너간 그는 공병장교 경험을 살려 뉴욕에서 건설업을
시작했고 적잖은 돈을 번 것으로 전해졌다.

그는 "파크랜드 건축" 대표로 사업을 하면서 미국 국무부 극동담당 자문위원
등 활발한 사회활동을 했으며 90년에는 미국의 한 잡지가 선정한 "막후에서
미국을 움직이는 파워브로커 73인"에 뽑히기도 했다.

그는 지난 80년대초 김대중 대통령의 미국 체류때 일부 경비를 지원해
동교동계와 인연을 맺었다고 한다.

박씨는 이러한 배경을 바탕으로 지난 98년 김 전총장을 김 대통령 당선자와
독대할 수 있게 자리를 만들어 줬고 이 이후 막역하게 지냈다는 것.

그는 한국을 방문할 때 마다 수시로 김 전총장 집무실을 찾아 교분을
나눴다는 후문이다.

신동아그룹내에서 박씨의 역할은 철저히 베일에 가려져 있었다.

공식 석상에도 나타나지 않아 그의 재직 자체를 아는 사람은 극소수였을
정도다.

< 김문권 기자 mkkim@ked.co.kr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11월 27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