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자표 고무신, 유엔성냥, 삼표연탄, 고려주판, 빠이롯트만년필,
동아연필..."

60~70년대 삶의 애환을 고스란히 담아내며 우리 생활의 한부분을 장식했던
상품들이 추억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있다.

이름만으로도 중장년층 소비자들의 향수를 자극하기에 모자람이 없는 이들
상품은 시간의 흐름을 타고 과거 속에 묻히면서 어느새 박물관의 "유물"로
변해가고 있다.

이사나 개업식때 "불처럼 일어나라"며 한 두통씩 선물로 사들고 다녔던
통성냥.

이 상품은 그러나 일회용 라이터에 밀려 "희귀품"이 돼 버린지 오래다.

현재 국내에서 성냥을 만드는 곳은 6개 회사.

30개가 넘었던 50~60년대와 비하면 몰락이라는 단어가 제격이다.

그나마 3개사는 중국에서 알성냥을 수입해 포장판매만 하고 있다.

성냥회사의 대명사였던 "유엔성냥"도 생산시설을 파키스탄에 팔아치운
후 수입포장업체로 전락해 버렸다.

30년 넘게 낙타표와 돈표성냥을 생산중인 영화인천산업사만이 그나마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부친으로부터 사업을 물려받은 신광규 사장(54)은 "70년대 초까지만 해도
한달 평균 2천5백만통을 생산했으나 지금은 2~3백만통에 불과하다"고
씁쓸해했다.

신사장은 당시에는 중동 등지로 연간 1백만달러어치 수출까지 하는 등
재미가 쏠쏠했다고 회상했다.

이 회사는 지금은 가정용 통성냥을 거의 만들지 않고 호텔 식당 등의
PR용 상품만 제작하고 있다.

통성냥은 현재 시중에서 대략 한통에 8백원선에 팔리고 있다.

난방연료의 왕좌자리를 누렸던 연탄도 "열기"를 잃어가고 있다.

한국연료공업협동조합은 올해 우리나라 연탄 생산량을 1백만t으로
전망했다.

지난 86년 2천5백만t에 비하면 4%에 불과하다.

서울시 전체의 경우 지난 89년 한해 19억개에 달했던 연탄수요가 올해는
6천만개로 급감할 전망이다.

수요가 줄어들면서 서울에 있던 4개 연탄회사중 삼천리 대성만 남고 삼표
동원은 문을 닫았다.

수색 시흥동 오류동 등에서 4개공장을 돌렸던 삼천리는 현재 이문동 한곳만
가동중이다.

이 회사 김성식 과장은 "매일 2백만장을 찍어내도 없어서 못팔던 때가
있었다"며"그러나 주거 및 난방형태가 바뀌면서 수요가 급감했다"고
아쉬워했다.

삼천리는 현재 하루 10만여장을 팔고 있다.

"엿을 바꿔먹던" 고무신도 기억속에서 멀어진 지 오래다.

자유당과 박정희 정권을 거치면서 "고무신 선거"라는 유행어까지
탄생시켰던 신발의 대명사 고무신은 만월표(경성고무) 왕자표(국제상사)
말표(태화고무) 범표(삼화고무) 등 주요 상표들이 완전히 사라졌다.

고무신은 현재 몇몇 중소업체만이 근근히 만들어내고 있지만 한국신발산업
협회조차 제조업체를 정확히 파악하지 못할 정도로 유명무실한 상태를 면지
못하고 있다.

"땅속에 파묻힌" 항아리도 빛을 못 본지 오래다.

종로구 부암동에서 25년째 항아리를 팔고 있는 박충옥씨는 "80년대 중반만
해도 한해 5t트럭으로 13~14차(1차당 2백개)를 팔았다"며"그러나 올해는
반차도 못팔 것 같다"고 말했다.

올봄까지는 그럭그럭 꾸려갔으나 김치냉장고가 나오면서 이제는 아예
손님의 발길이 뚝 끊겼다는 것이다.

주판은 컴퓨터와 전자계산기에 밀려 수명을 다했다.

한일주판 등 주요 메이커들은 이미 오래전 폐업을 했다.

마지막까지 버티던 한국산기도 30년 가까이 해온 사업을 95년에 접었다.

대물림으로 한국산기를 꾸려왔던 김정한씨는 "영재교육의 으뜸수단이었던
주산이 상업고 정규과목에서조차 빠질 정도로 인기가 급락했다"고 말했다.

만년필 잉크 공책 연필 등 문방구류도 상황은 비슷하다.

빠이롯트의 경우 현재 판매량이 월1백개 정도에 그치고 있다.

이 회사의 정기주 전무는 "70년대 만 해도 만년필은 전체매출의 90% 이상을
차지하는 효자상품이었다"며 "그러나 지금은 5%도 채 안된다"고 말했다.

최근 연탄 고무신 DDT뿌리개 등 향수상품들로 특별전을 열었던 국립민속
박물관의 학예연구사 기양씨는 "요즘 사람들은 옛것을 너무 빨리 잊어버리고
쉽고 편한 것만 찾는것 같다"며 "시대흐름을 거스를순 없지만 아쉽다"고
말했다.

< 김수찬 기자 ksch@ked.co.kr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11월 25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