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당에 사는 주부 김희숙(33)씨는 며칠전 동대문시장에 쇼핑하러 갔다가
여러가지 불쾌한 경험을 했다.

우선 인도와 상가가 너무 혼잡해 진땀을 흘려야 했다.

동대문운동장 역에서 의류상가까지 가는 길은 인산인해였다.

가뜩이나 비좁은 통행로는 노점상들이 절반 이상 차지하고 있었다.

허씨는 상가를 둘러보다가 한 가게에서 니트셔츠를 샀다.

그런데 집에 와서 보니 실이 풀린 곳이 있었다.

이튿날 가게를 찾아가 바꿔 달라고 했다.

그러자 판매원은 "주인이 나올 때까지 기다리라"고 했다.

그럴 시간이 없어 한참 실랑이를 벌인후 바꿔오긴 했지만 속이 무척 상했다.

허씨 뿐이 아니다.

동대문 시장에서 쇼핑한 소비자중엔 비슷한 경험을 했다고 말하는 사람이
하나 둘이 아니다.

전문가들은 동대문시장이 세계적 패션쇼핑명소로 부상하려면 이제 이런
과제들을 더 이상 방치할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노점상 문제

동대문시장은 다른 재래시장과 마찬가지로 노점상 천국이다.

흥인시장 지하도 출입구에서 팀204에 이르는 길은 밤이면 인도가 사라진다.

사람이 걸어다녀야 할 인도에는 포장마차들이 빼곡히 들어선다.

동대문운동장 역에서 밀리오레에 이르는 1백여m의 인도와 우노꼬레에서
팀204까지 1백여m의 차도 역시 노점상들이 절반을 차지해 버린다.

주변 상가 상인들은 노점상들이 장사에 방해가 된다며 아우성이다.

날을 잡아 시위를 벌이기도 하고 당국에 진정서를 내기도 한다.

그러나 대책회의가 열리면 공무원들은 입을 다물어 버린다.

쉽사리 해결될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상인들은 이 문제를 외면하고 동대문을 패션쇼핑명소로 만든다는
것은 우스운 얘기라고 주장한다.


<>지하경제 문제

상인들의 일급 비밀은 매출이다.

특히 언론에 보도되는 것을 꺼린다.

세원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신용카드를 기피하는 것도 똑같은 이유에서다.

상인들은 "어떤 바보가 세금 꼬박꼬박 내며 장사하겠느냐"고 반문한다.

"세금 제대로 내고 이익 낼 상인은 없다"고까지 말한다.

어떤 상인은 "우리는 임대료에 세금까지 내면서 장사하는데 도로를 무단
점령한 노점상들은 세금 한 푼 내지 않는다"고 목청을 높인다.

조세 행정의 잘못을 짐작케 하는 얘기들이다.

물론 단시간에 해결될 문제는 아니다.

당장 문제를 해결하려고 덤비면 조세저항만 초래할 게 뻔하다.

그렇다고 마냥 방치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다행히 최신 패션쇼핑몰들을 중심으로 신용카드 사용이 확산되고 있다.

외국인 쇼핑객들을 많이 끌어 들이려면 신용카드 사용을 활성화해야 한다고
말하는 이들도 많다.

하지만 상인들의 거부감을 누그러뜨리려면 유인책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서비스 개선

동대문 의류상가들은 백화점급 시설을 갖춘 곳이라도 서비스는 재래시장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는 곳이 허다하다.

점원들은 사소한 일로 고객과 삿대질하며 싸우곤 한다.

상인회 사무실은 밤이면 경찰서 형사계를 연상시킬 정도로 살벌하다.

가게에서 반품이나 교환을 거부했다고 호소하는 고객을 상인회 간부들이
"고객측 잘못"이라며 야단치는 광경도 벌어진다.

외국인에겐 더 심하다.

손목을 잡아당기기도 하고 등뒤에서 심한 욕을 퍼붓기도 한다.

외국인이 혼자서 물건을 둘러 보다 그냥 가면 모퉁이에 몰아세우고 위협할
때마저 있다.

바가지를 씌우는 사례는 비일비재하다.

일부 상인들은 "당장 서비스를 개선하지 않으면 언젠가는 내국인이든 외국인
이든 동대문을 외면할 수 있다"고 우려한다.


<>기타 문제들

교통체증도 동대문시장이 안고 있는 난제 가운데 하나이다.

재래상가들은 대부분 주차장은 커녕 최소한의 빈땅마저 확보하지 않고 있다.

상인들은 버젓이 차도에 차를 세워놓고 짐을 싣고 내린다.

이런 상황에서 대형 쇼핑몰들이 들어서는 바람에 동대문 도로는 몸살을
앓고 있다.

심각한 상가 공급과잉도 동대문시장의 발전을 가로막는 요인이다.

상당기간 동대문상권의 구조조정은 불가피한 실정이다.

이밖에 일부 상가들의 상인 강제퇴점과 이로 인한 갈등도 동대문사람들이
풀어야 할 숙제 가운데 하나이다.

< 김광현 기자 khkim@ked.co.kr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11월 23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