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도은 < 본사 논설고문 >

미 예일대학의 역사학 교수 폴 케네디는 한국에서도 번역출판된 그의 93년
저작 "21세기 준비"에서 한국을 일본과 더불어 21세기에 대한 대비가 비교적
잘 돼 있는 국가군에 드는 나라가 아닌가 싶다고 했다.

그리고 이들 국가에 어느정도 공통되는 점 가운데 한가지로 "우수한 교육
제도"를 꼽았다.

그는 또한 "남자 성인의 18%와 여자 성인의 6%만이 글을 해득하는 소말리아
의 경우"를 "그 비율이 각각 96%와 88%이고 5백만명이 중등학교에, 1백30만명
이 대학에 다니고 있는 한국"과 비교하면서 "개발도상국들은 한국이 걸어온
길을 답습함으로써 밝은 미래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런 우리의 교육이 21세기가 턱밑에 다가온 지금 이 순간 우리 자신에 의해
"위기"진단을 받고 있다.

21세기 준비가 잘 돼 있기는커녕 이대로 가다가는 아예 21세기가 없다는
비관론이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대학이 망해야 나라가 산다"는 표제가 붙은 한 현직 대학교수의 신간이
화제를 모으고 있는가 하면 정상수업이 힘든 "교실 붕괴" 현실을 개탄하면서
기회가 오면 언제든지 중.고교 교단을 떠나고 싶어하는 교사가 많다는 언론
보도 등은 인천 호프집 화재참사, 그리고 엊그제 있은 올해 대입수능시험을
전후한 우리사회의 소란스런 모습과 뒤엉키면서 교육위기의 심각함을 새삼
실감하게 만든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좌절할 것은 없다.

그래서도 안된다.

위기는 곧 기회라는 말이 있듯이 위기의 실체와 현실을 똑바로 인식하고
우리의 힘과 지혜를 모은다면 얼마든지 극복 가능하며, 전혀 다른 모습으로
21세기를 맞을 수 있다고 믿는다.

교육은 범위를 넓히면 사회교육 가정교육, 그리고 학교교육을 총망라한다.

또한 교육은 제도권교육과 비제도권교육, 공교육과 사교육으로 구분할 수
있다.

가정교육과 사회교육에도 물론 문제가 없지 않다.

그러나 우리가 지금 위기라고 걱정하고 있는 교육은 특히 학교교육 제도권
교육 공교육을 두고 하는 얘기다.

이것이 교육의 기본이자 중추임은 더 말할나위 없다.

이게 잘못 돼서는 다른 어떤 교육도 제대로 될 수가 없다.

따라서 과제는 바로 이 학교교육을 바로잡는 것이다.

교육의 위기를 걱정하면서도 한가지 우리가 늘 위안을 삼는 것은 우리 사회,
우리 학부모들의 높은 교육열이다.

세계에서 둘째 가라면 서러워할 우리네의 높은 교육열은 그동안 숱한 문제와
부작용을 낳기도 했지만 21세기 국가장래를 위해서 계속 지키고 가꿔가야 할
귀중한 자산이다.

높은 대학진학률, 과외열풍, 촌지소동, 학력인플레, 그리고 이민과 유학
등은 모두 교육에 대한 신앙에 가까운 열의와 관계가 있다.

이런 현상은 연고와 엘리트주의가 지배하는 우리 사회에서 교육이 가장
확실하고 빠른 신분상승, 출세와 성공의 수단이자 경쟁에서 이기는 길이기
때문이다.

교육은 모든 사람에게 최우선 순위의 투자로 여겨진다.

그렇기 때문에 공교육비를 능가하는 사교육비가 별 저항없이 감내되고 있는
것이다.

기대치에 턱없이 모자라는,그렇다고 해서 가까운 장래에 채워질 수 있을
것 같지도 않은 학교교육의 결함으로부터 벗어날 또하나의 새로운 탈출구가
됨직한 조기유학 자유화문제가 지금 세간에서 비상한 관심을 모으고 있다.

해외유학 하면 원래 대학생부터가 대상이다.

중.고생은 단지 예.체능계에 한해 극히 제한적으로 허용되고 있을 뿐이다.

그런데 지난 10월초순 교육부가 빠르면 내년부터 시행할 생각으로 중.고생의
조기유학 허용 확대방침을 밝히고 그에 대한 여론 수집에 나선 것이다.

교육부는 이번 기회에 아예 초.중.고생까지 해외 조기유학을 전면 자유화하
느냐 아니면 우선 중졸자 이상, 즉 고교생까지만 자유화할 것이냐를 놓고
저울질하고 있는 모양인데 어느 쪽이 되건 조기유학의 문이 조만간 활짝
열릴 것만은 분명한 것같다.

규제완화와 국민의 교육선택권 보장차원에서 자유화하려는 것이라는 게
교육부의 설명이다.

또한 조기유학자에 대한 병무청의 국외여행 허가제한이 풀리고 언필칭
세계화와 개방화를 지향하는 마당에 조기유학 제한은 설득력이 미약해졌다는
것이다.

아무튼 조기유학이 만약 개방된다면 위기의 수렁에서 허우적대는 우리의
교육현실과 자녀교육을 위해서라면 어떤 희생과 대가도 기꺼이 지불하고자
하는 우리의 왕성한 교육열이 맞물려 상당한 호응이 있지 않을까 보인다.

위화감 문제 등 염려되는 부작용은 달리 극복할 방도를 찾아야 할 것이다.

위기만을 개탄하고 있어서는 아무것도 안된다.

미래가 없다.

이제라도 정신차려 안팎에서 우리의 높은 교육열을 잘 살릴 수 있게만
된다면 21세기는 크게 걱정 안해도 될 것이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11월 19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