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공사 삼일"이라는 속담이 있다.

예부터 우리나라 사람들이 참을성이 모자라서 법령 등을 자주 고치는 것을
본 중국인들이 이렇게 빈정대던데서 연유한 말이다.

어떤 법을 한 번 만들면 조금 불편하더라도 지그시 참을성 있게 지켜가지
못하고 하루가 멀다하고 고치고 뒤바꾸는 요즘의 세태도 우리의 그런 깊은
병 때문은 아닐까하는 생각도 든다.

지난해에도 시안까지 마련해 공청회까지 열었다가 "찬.반양론이 팽팽하고
경제위기의 시대에 효과이상의 사회적 비용을 일으킨다"고 재정이 보류됐던
"국어 로마자 표기법"도 그렇다.

1939년 매큔-라이샤워의 표기법이 쓰이기 시작한 이래 60년동안 표기법이
바뀌는 것이 다섯번째다.

중국은 표기법을 제정한 후 1백32년동안 2번 바꿨다.

현행 표기법은 41년동안 쓰고 있다.

또 일본은 1백14년동안 6번 바꿨지만 54년동안 그대로 쓰고 있다.

그런데 우리는 84년 바꾼 것을 14년만에 다시 고치겠다는 것이다.

이번 개정시안을 보면 서울올림픽때 외국인을 위한답시고 서둘러 표기를
시작한 "반달점" "어깨점" 등 특수부호를 없애고 "Pusan"을 "Busan"으로 적는
등 자음의 유성 무성을 가리지 않고 소리나는 대로 적기로 한 것이 골자다.

전체적으로 59년 문교부안으로 되돌아가고 있는 듯한 인상이 짙다.

현행 표기법은 "발"과 "팔"이 구별되지 않고 "장녀"와 "창녀"가 구별되지
않는등 문제가 많다.

컴퓨터 자판에 "반달점"같은 특수부호가 없다는 것은 치명적이다.

반대로 새 시안은 ''김포(Gimpo)''를 "짐포"로 읽는 등 수많은 음운상 문제가
생긴다.

외국인들이 혼란스러워 할 것도 분명하다.

오늘 열리는 공청회에서 학자들의 충분한 토론을 거칠 새 표기법에 대해
가타부타할 생각은 없다.

26개의 로마자로 40개 에 달하는 우리말 음운을 적어야 하는 작업에는
어차피 무리가 따르게 마련이다.

다만 또 고려공사같은 성급함이 되풀이 될까 걱정이 앞선다.

국내외 표기의 혼란도 크겠지만 효과이상의 엄청난 사회적 비용을 무슨 수로
감당할 것인지 묻고 싶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11월 19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