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합주가지수가 900선을 훌쩍 뛰어넘어 증시가 활력을 되찾고 있는데도
투자신탁회사들의 분위기는 왠지 썰렁하다.

코앞으로 바짝 다가온 구조조정 때문이다.

경영진들은 구조조정에 뒤따라올 문책에 불안해하고 직원들도 그 정도는
아니지만 신분상에 변화가 일어나지 않을까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더러는 공공자금 투입에 앞서 단행될 감자로 우리사주 주식이 줄어들지
않을까 우려하는 분위기도 있다.

정부는 지난주 대우 워크아웃 계획과 함께 투신구조조정을 포함한 금융시장
안정 종합대책을 발표했다.

이미 보도된 대로 부실규모가 큰 한국투신과 대한투신에는 공공자금을
투입하고 다른 투신 및 투신운용회사들은 유상증자를 통해 부실을 해소토록
한다는 게 투신 구조조정방안의 골자다.

정부는 투신구조조정 계획을 내놓으면서 부실에 대한 책임을 특히 강조했다.

투신에 투입될 공공자금의 규모(약 3조원)가 워낙 크다 보니 경영진의
책임을 묻겠다는 정부방침에 대해 누구 하나 이의를 달지않는다.

투신 스스로도 "뭐라고 반론을 제기한들 "꿀밤"이나 한대 더 맞지 별 수
있겠느냐"며 입조심하려는 기색이 역력하다.

하지만 투신은 과연 지탄받아 마땅한지, 대우문제와 맞물려 도매금으로
넘어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증권시장의 안정에 기여한 점은 없는지 한번
꼼꼼히 짚어볼 필요가 있을 것같다.

투신 임직원들에 대한 문책의 공정성과 향후 투자신탁회사들의 건전한
성장을 위해서도 이 점은 분명하게 따져봐야 한다.

투자신탁회사 사람들이 자기들끼리 하는 얘기는 이렇다.

"투신의 부실로 인해 금융시장이 불안했던 점과 공공자금을 받을 수밖에
없게 된데 대해 책임질 부분은 책임을 지겠다. 그러나 투신의 부실이 비단
투신 경영진만의 책임은 아니다. 투신의 부실은 증시를 떠받치기 위해
투신에 대해 무제한 매입을 요구한 10년전의 "12.12 대책"에서 비롯됐다.
당시 어쩔 수 없이 매입한 주식에서 손실이 발행하면서 부실해지기 시작했다"
는 것이다.

채권형 펀드에 대우채권이 대거 편입돼있는 점에서 대해서도 투신은 할 말이
많다.

익명을 요구한 한 투신사 간부는 "투신업계는 98년말부터 대우의 위험성을
경고했으나 정부는 다양한 형태로 괜찮다는 사인을 보내왔다"며 "이제 와서
투신에 덤터기를 씌운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연초부터 아예 대우채권을 인수하지 않고 내다 팔아 정부의 의도와 달리
대우문제를 조기에 가시화시켰다면 과연 당국이 가만히 있었겠느냐"는
반문이다.

다음은 투신의 문제점만 거론하지 말고 금융시장의 안정에 기여한 점도
평가해달라는 주문이다.

IMF(국제통화기금)사태 이후 금융시장이 마비된 이후 유일하게 회사채와
기업어음의 인수를 통해 유동성의 물꼬를 터준 기관은 투신이다.

특히 은행 종금사의 퇴출과 보증기관의 파산으로 금융기관에 대한 불신이
커지고 보증채 시장이 붕괴되는 상황에서 투신은 금융시장의 공백을 외롭게
메워왔다.

98년 9조원, 99년중 24조원 규모에 해당하는 무보증 회사채는 투신과 일부
은행이 거의 다 인수했다.

맏형격인 은행이 BIS 기준을 맞추느라 기업대출을 줄이고 채권인수를 주저할
때 투신사가 회사채 시장과 단기금융시장을 받쳐왔다.

투신은 또 적극적인 주식형 상품개발과 공격적인 판촉활동으로 주식시장의
활황을 이끌어 한국경제의 최대 현안이었던 기업구조조정을 가능케 했다.

경제여건이 호전돼 주가가 구조적으로 오를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고
투신이나 증권회사의 공을 폄하하는 이도 있으나 어쨌든 정부-기업-투자자
모두가 이기는 윈-윈게임을 이끄는 데 투신이 상당한 역할을 한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물론 투신의 부실이나 불신은 스스로 초래한 측면도 결코 적지않다.

수익률 경쟁을 하느라 수익증권에 대우채권을 과도하게 편입시킨 게 대표적
이다.

펀드매니저들이 불량채권을 매입해주는 조건으로 거액의 사례금을 받은
사실도 적발됐다.

하지만 이런 점을 감안해도 투신 부실의 책임을 전적으로 투신 임직원들에게
만 돌리는 것은 어딘가 공정해보이지 않는다.

과거 관치금융하에서 금융시스템에 참여해 투신을 움직였던 정부 당국자들의
책임은 없는지, 신용평가기관들은 왜 진작 대우의 위험성을 경고하지 않았는
지, 실적배당 상품에 근본적으로 달려있는 리스크를 도외시하는 투자관행에는
반성할 점이 없는지 곰곰히 생각해봐야할 시점이다.

대우사태의 연장선상에서 투신 구조조정문제를 다루기보다는 금융시장
전체의 메커니즘속에서 접근하는 입체적 평가가 필요하다.

< heeju@ked.co.kr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11월 8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