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오 좀머 < 독일 디 차이트 발행인 >


지난 89년 11월에서 90년 10월까지 1년간 독일의 정치적 변화는 누구도
상상하기 어려웠던 결과를 가져왔다.

재통일 이후 독일인들은 21세기 "베를린 공화국"으로 향하는 길에 나선
것이다.

그러나 그 길은 상상했던 것보다 더 가파르고 험난하다.

이제 통일된 지 9년이 지났다.

정부와 국민들은 통일됐지만 아직 완전한 통합과는 거리가 멀다.

확대된 독일연방공화국(서독)은 아직 "반제품"상태다.

사실 반세기 가까이 분단된 두 독일의 정체성이 하루아침에 같아지거나
합병될 수는 없다.

오랜 분단 기간 양 독일은 매우 다른 길을 걸어 왔다.

서로가 안고 있는 문제점도 다르다.

통일로 하나가 된 분야에서도 발전속도는 매우 느렸다.

이는 복잡한 비즈니스의 세계, 특히 사상과 감정의 영역에서 특히 더
그렇다.

구동독 지역을 여행해 보면 지난 90년이후 이룩된 경제적 발전을 실감할 수
있다.

곳곳에 주택과 빌딩, 쇼핑센터가 들어서는 등 현대화 작업이 한창이다.

상점에 진열된 상품이나 도로, 철도의 안락한 시스템은 서쪽과 같은
수준이다.

통신망도 현대화됐다.

생활조건의 평준화가 급속히 진척되고 있는 중이다.

통독 당시 서쪽 평균치의 39%였던 동쪽의 임금수준은 이제 80~90% 수준으로
올라갔다.

퇴직후 받는 연금 역시 서쪽의 85% 수준이다.

베를린 장벽이 붕괴된 후 첫 10년동안 옛 동독지역에 투입한 정부예산은
1조5천억 마르크를 넘는다.

매년 옛 서독 국내총생산(GDP)의 4~5%를 투자했다.

세계 역사상 동독재건 프로그램보다 규모가 더 큰 지원사업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동쪽의 실업률은 서쪽의 2배가 넘는다.

일부 지역에서는 실업률이 25~30%나 된다.

산업생산에서 동쪽이 차지하는 비중은 약 15%에 불과하고 수출 기여도는
2%밖에 안된다.

이는 우리의 노력이나 의지와는 관계없는 일로 보인다.

해결해야 할 과제가 너무나 방대하기 때문이다.

또한 사회주의의 부정적이고 파멸적인 유산의 결과이기도 하다.

서독의 성공적인 시장경제와 민주체제가 옛 동독 체제의 결함을 하룻사이에
제거할 수는 없다.

두 지역 간의 정신적 정서적 분열도 경제적 격차만큼이나 크고 깊다.

우선 먹고 마시고 보는 일상생활에서 서로 다르다.

동쪽 주민들은 아직 통일독일에서 편안함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

독일인들은 아직 2개의 다른 세계에 살고 있다.

현실에서는 베를린장벽이 무너졌지만 시민들의 마음 속에는 아직 이 장벽이
남아 있는 것이다.

통일과정에서 정치적 또는 경제적으로 잘못된 결정을 하거나 진행한 일들이
적지 않다.

또 지난 90년의 화려한 꿈은 아직 열매를 맺지 못했다.

그러나 동쪽의 5개주는 발전하고 있다.

서독 경제에 도약의 추진력을 제공해 주었던 50년대와 60년대의 번영이
동쪽에서도 이뤄질 것이다.

이는 분명히 새로운 중산층을 형성시켜 동쪽의 사회학적 동질성을 변화시키
고 민족통합을 촉진시킬 것이다.

통독 이후 동독지역은 지금 지난 1940년대 말의 서독 상황과 유사하다.

동독주민들도 당시의 서독인들과 비슷한 방법으로 상황을 타개해 나갈
것이다.

동.서 주민들간의 거리감도 전체 독일인의 정체성이 새로 발전함에 따라
녹아 없어져 버릴 것이다.

베를린 천도는 이 과정을 촉진하고 가속화하는 조치다.

또 독일인의 공통된 민족적 운명은 독일인의 정체성에 생긴 균열을 접합
시키는 데 도움이 된다고 믿는다.

97년 여름 오데르브루흐지역 홍수때 전개된 구조활동을 통해 우리는 이를
확인할 수 있었다.

독일은 동과 서의 문제들을 동시에 극복해야 하는 지구상의 유일한 나라다.

사회적 시장경제에 기반을 두고 옛 동독 공산체제의 전환과 서독체제의
현대화를 완성해야 한다.

이는 대단한 노력을 필요로 하는 과제다.

그러나 무엇보다 인내가 필요하다.

빠르고 값싼 해결책은 없다.

통일은 최소한 한 세대동안 진지한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 과정이다.

앞으로 수십년동안 이 역사적인 "반제품"을 완성해야 한다.

이 상황에서 조급함은 최악의 행동지침이다.

우리는 현재 여러가지 점에서 반세기 전에 겪었던 것과 같은 3가지 도전에
다시 직면해있다.

피폐해진 나라를 재건해야 하고 옛 동독지역 주민 1천6백만명을 통합해야
한다.

그리고 과거의 번거로운 짐들을 해결해야 한다.

여기에 적용할 만한 공식은 그리 멀지 않은 과거에 있다.

또 그 공식은 대단한 성공을 거뒀었다.

바로 함께 일어나 소매를 걷어붙이고 일하는 것이다.

다시 성공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

< 정리=박수진 기자 parksj@ked.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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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독일의 대표적 언론인이자 시사주간지 "디 차이트"의 발행인인
테오 좀머(68) 박사가 최근 독일 연방정부 공보실이 발행하는 격월간지
"도이칠란트"(10~11월호)에 "1989년 11월 9일, 전환점"이란 제목으로 기고한
글이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11월 2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