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회의원 추천제안 ]


65년2월 경제인협회 주도로 "정치자금양성화"가 입법화됐다.

이 과정에서 여당인 공화당은 "어차피 정치자금을 낼 바엔 협회가 국회의원
도 추천하는 것이 어떠냐"며 나온다.

이 아이디어는 몇몇 약삭빠른(?) 경제인이 먼저 제안했을 가능성도 없지
않다.

한.일국교정상화로 무.유상 6억달러 이상의 외화가 들어오는 시점이었다.

여기에 참여하려면 권력과 가까워야 유리했다.

정당으로서도 돈있는 굵직굵직한 기업인출신 의원을 확보하는 게 당비
조성에 유리했다.

이쯤 되니 65년8월초 이한원(대한제분), 이원만(한국나일론), 심상준
(제동산업) 사장 등이 국회의원 추천을 정식 제안해 온다.

경제인협회는 이 제안을 이사회에 상정했으나 합의를 도출하지 못했다.

부득불 임시총회를 소집했다.

협회발족이후 연 이틀 계속 총회를 열어 다룬 안건은 이번이 처음이다.

찬성에 앞장선 사람은 위에서 언급한 세 회원이며 반대자는 홍재선(쌍용),
조홍제(효성 창업자), 설경동(대한방직)씨 등이었다.

찬성의 논리는 이랬다.

"어차피 정치자금을 내야한다면 국회의원까지 추천해 경제계 의견을
대변시켜야 한다"는 논리였다.

다음은 "61년초 소위 부정축재자 처리법안 심의과정에서 국회에 경제계
대표가 없어 얼마나 어려움과 수모를 당했는가".

마지막으로 "앞으로 혁신세력이 커질 수도 있으니 지금부터 민주 시장경제
세력을 국회에 보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에 맞선 반대논리도 만만치 않았다.

첫째 경제인협회 자체는 비정치.비영리 단체다.

국회의원 추천은 설립 취지와 정관에도 어긋난다.

둘째 경제계에는 여당 야당 지지자가 있을 수 있다.

국회의원을 내면 여야분쟁은 필시 경제계, 즉 협회의 내분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셋째 국회에서 힘을 갖자면 최소한 3분의1 의석은 돼야 하는데 이를 위해선
엄청난 경비가 소요될 것이다.

이런 논지로 불꽃튀는 설전을 벌였다.

이 과정에서 당시 사무국장이었던 필자는 경제인들이 언변에 능하다는
사실을 새삼 알게 됐다.

특히 반대논리의 최선봉에 선 홍재선 회장은 경성법전(법전.현 서울대법대)
출신답게 논리정연한 법이론까지 동원하여 찬성 진영을 논박했다.

또 평소에 과묵하기만 하던 조홍제 회장의 해박한 지식과 능변에 새삼
놀랐다.

찬성진영에 앞장선 심상준 사장은 사무국에 "협회가 국회의원을 추천하면
사무국에도 국회진출 기회가 있을 것이 아닌가..."라고 넌지시 유인했다.

이원만 사장은 후에 공화당으로 국회에 진출했다.

논쟁은 백중지세로 다음날 오후까지 이어졌다.

이러다가는 협회가 양분될 위기감마저 감돈다.

이때까지 아무말 없이 묵묵히 듣고만 있던 김용완 회장은 본인과 윤태엽
사무차장을 불러 수습책을 지시한다.

필자는 별실에서 윤 차장과 숙의했다.

윤 차장은 투표로 결정해도 된다는 의견을 냈다.

필자는 직감으로 투표하면 회가 분열될 공산이 크니 투표는 피할 것을 주장
했다.

협회 운영에 대해선 윤 차장 의견에 묵묵히 따르기만 했던 필자가 처음으로
내목소리를 냈다.

그래서 수습위원회를 구성, 이들에 위임키로 회장에게 진언했다.

김 회장도 이 수습안에 찬성했다.

연이틀 계속된 지루한 회의에서 회원들도 할말을 다 털어놓은 터였다.

김용완 회장은 수습위원을 7인으로 하고 구성은 회장단에 위임할
것을 제안했다.

수습위원 찬반 양측에서 3명, 지금까지 발언하지 않은 회원 1명을 추가키로
했다.

이렇게 균형있게 구성하면 반대파도 납득할 것으로 여겼다.

지금도 기억하지만 필자는 수습회의에 들어가는 구평회(당시 금성사 전무,
후에 무협회장)전무에게 7대3정도로 반대할 것이라는 회원 동향을 귀띔했다.

연이틀 지속된 총회가 경제인협회 정치문제 토의의 마지막 진통이었다.

수습위원회에서 국회의원 추천안은 4대3으로 부결됐다.

따라서 이 문제를 총회에서 투표로 정했다는 당시 신문보도는 사실이
아니다.

< 전 전경련 상임 부회장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11월 1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