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광현 < 고려대학교 교수 / 산업개발연구소장 >

대부분 기업들이 지금쯤 내년 사업계획 수립에 바쁠 것이다.

내년의 유가 수준은 어떨까.

금융 위기는 해소될 것인가.

엔고는 계속될까.

정부 정책은 어떻게 바뀔까.

이런 물음에 대한 예측을 도대체 하기가 어려워 뉴 밀레니엄의 시작인 내년
사업계획 수립에 애를 많이 먹고 있다고 얘기하고 있다.

이런 얘기는 21세기를 목전에 뒀기 때문에 나오는 것이 아니고 매년 이맘때
쯤이면 항상 나온 얘기다.

대부분 기업들이 이렇게 여러 가지 내외부 요인들을 열심히 분석하는 것
같더니 막상 사업계획을 수립할 때는 "내년은 경기가 좀 좋아진다지, 그래
내년은 15% 성장을 해야겠지"하면서 지난번 사업계획을 꺼내다가 "지난번 것
곱하기 1.15"식으로 하지 않았던가.

말로는 예측 전망 시나리오 개혁 변신 등을 외치더니 막상 사업계획을 짤
때는 올해는 작년 것을, 작년은 재작년 것을 베끼고 있다.

이런 기업들이 과거의 연장선상에서 아직도 미래를 바라보고 있어 21세기를
위한 건전한 적자부문에 투자를 하지 못하는 것이다.

이런 기업들의 행태가 바로 현상유지인 것이다.

지금같이 격변하는 시대에 현상유지는 퇴보와 몰락을 의미한다.

서울에서 큰 식당을 하는 60대 초반의 사장이 필자한테 이런 얘기를 했다.

"30대에 식당을 시작해 이제는 꽤 큰 식당을 만들어 놨습니다. 사실 더욱
발전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신규 투자도 해야하고 변신도
해야 하는데 괜히 잘못 투자하다가는 공연히 손해나 볼 것 같기도 하고,
새로운 시도에 겁도 나기도 했습니다. 이제는 나이도 들고 해서 현상유지나
하려고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현상유지나 하려 했으나 현상유지가 안된다는 것이다.

현상유지 생각이 드는 순간부터 별다른 사업 아이디어도 떠오르지 않고
사업은 계속 하향곡선을 긋는다는 것이었다.

경영이란 현재를 관리하는 것이 아니고 현재와 미래의 균형을 맞추는 일이다

특히 21세기형 경영이란 수비수가 아닌 공격수가 돼 미래를 관리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미래 성장의 초석인 건전한 적자 부문이 없이 입술로만 변화를 외치면서
현상유지만 하는 기업은 몇 년은 버틸지 모르나 곧 내리막길을 걷게 될
것이다.

며칠전 여러 기업의 기획실장들과 세미나를 했었다.

이들의 고민은 다음과 같았다.

"IMF관리체제하에서 살아남기 위해 자의적, 반자의적으로 인력과 사업을
구조조정하다 보니 매출은 과거보다 좀 줄었으나 수익성이 많이 좋아졌다.
그러나 문제는 그 동안 미래를 위해 투자했던 여러 부문들이 싹 없어졌다.
즉 신기술 개발부문, 신규 설비투자, 신규 사업부문, 인재양성투자 등
건전하건 불건전하건 적자부문을 모두 구조조정했다. 그래서 지금은 흑자를
보고 있으나 심히 미래가 걱정된다"

구조조정이란 무엇인가.

군살을 빼고 허약한 곳은 보강해, 체력을 더욱 튼튼히 하라는 것이지 군살
이건 근육이건 무조건 살을 빼라는 것이 아니다.

즉 건전한 적자부문까지 없애 버리라는 것이 아니다.

초기 투자로 지금은 적자를 내고 있으나 미래 성장이 예상되는 기술 및
사업분야는 지속적인 투자가 필요하다.

그러나 지금의 구조조정 양상을 보면 그야말로 "한달 내 20kg 감량 보장"
이란 어떤 광고 문구를 보는 듯하다.

농부는 아무리 배가 고파도, 심지어 굶어 죽는 순간까지도 종자 씨를 품에
안고 죽는다 한다.

우리는 지금 종자 씨마저 삶아 먹고 있지 않는지 반성해 보아야 한다.

20세기 기업 경영의 화두는 그야말로 관리였다.

창업해 성장하는 기업을 어떻게 잘 관리하느냐가 경영의 주관심사였다.

그러나 혼돈과 불확실성이 가득한 21세기는 관리위주의 경영으로는 생존조차
어렵게 될 것이다.

21세기 경영의 화두는 그야말로 "변화창조"이다.

미래 변화를 눈을 부릅뜨고 바라보면서 지속적으로 뭔가 창의적이고
차별적인 것을 경쟁사보다 먼저 창조해 나가야 한다.

현상유지의 사고와 관리위주의 사고로는 변화를 창조할 수 없다.

즉 건전한 적자 부문에 대한 지속적인 투자 없이 미래를 담보할 수 없는
것이다.

21세기가 이제 두달남짓 남았다.

과거의 연장선상에서 미래를 바라보는 시각이 아니라, 미래를 그야말로
새롭게 바라보고 수비수의 태세가 아닌 공격자의 자세로 건전한 적자 부문에
대한 지속적인 투자가 절실한 때이다.

< hyeon@tiger.korea.ac.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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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자 약력

=<>고려대 졸업
<>프랑스 리옹대 경영학박사
<>저서:21세기 기업생존전략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10월 27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