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사태가 다시 일어나고 있습니다. 방송이 끝나는 즉시 철수해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

지난 18일 오후 KBS 1TV의 "시련의 캉첸중가!70일의 기록"을 지켜본
시청자들은 불안함을 감출 수가 없었다.

강풍을 탄 눈보라가 진행자의 얼굴을 사정없이 후려쳤다.

이리저리 흔들리는 카메라.

바람소리에 묻히는 음성, 중간중간 끊기는 연결.

이형걸 아나운서와 함께 베이스 캠프에서 진행을 맡았던 등반단장의
목소리에는 위기감이 배어났다.

그들은 무엇을 위해 그러한 위험을 무릅써야 했을까.

18일의 정상등반 시도를 마지막으로 KBS가 국내방송 사상 처음으로
시도했던 히말라야 캉첸중가봉(해발8천5백86m) 정상등정 생중계 계획은
결국 실패로 돌아갔다.

KBS가 밀레니엄 특집으로 마련한 초대형 기획이 물거품이 되는 순간이었다.

그 뒤에는 지울 수 없는 희생이 뒤따랐다.

12억원이 넘게 투입된 예산은 둘째 문제다.

무엇보다 큰 상처는 등반대원과 취재기자 2명이 눈사태로 사망하는
사고였다.

KBS노동조합에서는 이번 사건과 관련, 회사측의 졸속기획을 문제삼고 있다.

경쟁사인 SBS가 히말라야 정상등정 생중계를 계획하자 캉첸중가봉 등정
생중계를 서둘렀다는 지적이다.

방송사 직원들이 불과 몇개월의 준비만으로 히말라야에 간 것 자체가
무리였다는 비판의 목소리도 강하게 흘러 나오고 있다.

전문산악인들도 히말라야 8천m급 봉우리 등정을 위해서는 1년이상 체력훈련
을 거친다는 점을 생각해 보면 정말 아찔한 기획이다.

원정대는 특히 "코리안 신루트"를 개척한다면서 가장 어렵다는 캉첸중가
북벽루트를 택하는 우를 범하고 말았다.

결국 이번 히말라야 등정 실패와 그에 따른 사고는 사전준비 부족과 무리한
현지촬영으로 인해 발생한 문제였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이번 사건은 대형기획물 일수록 철저한 사전준비작업이 필요하다는 교훈을
남겼다.

과욕이 무리수를 낳고 무리수가 화를 부른 것이 아니었는지 곰곰히 생각해볼
일이다.

< 김혜수 기자 dearsoo@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10월 20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