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체국에서 편지 한 장 써보지 않고/ 인생을 다 안다는 사람들을 또
길에서 만난다면 /나는 편지봉투의 귀퉁이처럼 슬퍼질 것이다. /바다가 문닫
을 시간이 되어 쓸쓸해지는 저물녘 /퇴근을 서두르는 늙은 우체국장이
못마땅해 할지라도/나는 바닷가 우체국에서/만년필로 잉크냄새나는 편지를
쓰고 싶어진다.../느리게 느리게 굴러가다가 머물러야 할 곳이 어디인가를
아는/우체부의 자전거를 생각하고/...".

안도현 시인의 "바닷가 우체국"의 일부이다.

그러고 보니 어느 새 나도 우체국을 잊고 살고 있은지 오래인 모양이다.

그렇다.

속도!

몇 년 전만 해도 나는 원고를 쓰면 등기 속달로 부치곤 했었는데, 팩스를
이용하게 되었고, 이제는 그것도 답답해 통신을 이용하게 되었다.

가끔 서울에 갈 때 ''무궁화 호'' 기차를 탔었으나, 그것의 속도가 신경질이
나 ''새마을 호''를 타게 되었고, 이제는 비행기를 타고 왔다갔다 하게 되었다.

아마 조금 더 있으면 고속 전철을 타게 되리라.

''이 좁은 땅에서 자동차를 타는 것에 대해 비난하는 칼럼''을 써서 담당기자
로부터 ''자동차는 이제 거의 필수품이 되었다''는 질타와 함께 그 문장을
삭제 당했었는데, 이제는 나도 자동차를 타고 학교에 출근하게 되었다.

그런데 그렇게 해서 나는 무엇을 더 보게 되었는가.

생활이 얼마나 달라지게 되었는가.

오히려 나는 많은 것을 놓치고 우리의 사회를 더 보지 못하게 된 것은
아닌가.

길에 떨어진 ''꽁초''도 보지 못하게 되었으며, ...길가에 핀 작은 꽃도 보지
못하게 되었으며, 길 가에 선 이층 집의 가난한 간판도 보지 못하게 되었으며
... 그러다 보니 우리 사회를 선진사회와 구별없이 보게 되었으며, ...아무튼
나의 삶을 오해하였으며, 속도가 문화라고 생각하게 되었으며... 그러지
않았는가.

나는 우리 사회와 나를 착각하며 살고 있는 것은 아닌가.

"... 머물러야 할 곳이 어디인가를" 알지도 못하는 채.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10월 16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