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11월부터 공사현장을 찾는 공무원과 공공기관의 임직원들은 반드시 그
방문기록을 남겨야 한다.

이른바 현장방문 실명제이다.

법령이나 행정지침에 따라 이뤄지는 감사.검사.지도.감독.단속 및 단순 방문
등 어떤 목적의 방문에도 일률적으로 적용된다.

민간의 공사는 규모와 기간에 관계없이 모든 현장이 대상이며 국가기관과
지방자치단체, 정부투자기관, 특별법 및 조례 등에 의해 설립된 공사나
공단이 발주하는 공사는 금액 10억원 이상, 기간 6개월 이상이 대상이다.

이는 지난 9월 국무총리실이 마련한 부패방지 종합대책의 일환으로 부패가
심한 6개 분야 가운데 건축 및 건설 분야에 대해 건설교통부가 취하는
구체적인 조치다.

우리 사회의 부패가 국가의 발전을 저해하는 정도에 이르렀고 또 하루빨리
이를 뿌리뽑아야 한다는데에 전혀 이의가 있을 수 없다.

그러나 이런 지침까지 만들지 않으면 안 되는 우리의 현실이 참담하기 짝이
없다.

사회적으로 필수불가결한 공공의 목적을 위해 현장의 지도단속 업무를 맡은
수많은 공직자들을 모두 비리의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상정했다는 점도 마음
에 걸린다.

다른 편으로는 오죽했으면 이런 조치가 나왔겠느냐 하는 점에도 동의하지
않을 수 없다.

공사현장에 대한 단속은 줄곧 강화돼왔다.

그 명분은 부실을 방지하거나 위생.소방.경찰.환경.근로.안전.감사.검사
등 각종 행정목적을 달성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염불보다는 젯밥이라고 오히려 이 틈을 악용해 금품이 오가는 등
부패와 부조리의 근원이 되고 있다는 원성이 자자했었다.

자기 집을 스스로 지어보면 철저한 반정부주의자가 된다는 말이 나올 정도
였으니 부조리의 정도가 어떤지를 짐작할 수 있다.

지난 97년의 공공공사 현장은 3만1천7백11건, 이 중 계약금액 10억원 이상
짜리는 16.5%인 5천2백23건이었다.

같은 해의 건축허가 동수와 면적은 12만4천여동에 1억1천3백40만평방m에
이른다.

방문기록을 3년간 보존토록 한 조치에 따라 이 많은 현장에서 벌어지던
비리가 크게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고 한다.

사후처벌보다 사전예방이 더 중요하다는 점에서도 그런 기대를 가질만 하다.

그러나 혹시라도 실명제를 무력화시키고 건축주나 발주자를 더 괴롭히는
기발한 수법이 나타나지 않을지 걱정되기도 한다.

세무 경찰 환경 식품위생 등 나머지 분야에서도 국민들이 납득할 만한 후속
조치가 잇따를 것을 기대한다.

특히 생활급에 못 미치는 하위직 공직자들의 보수를 현실화하는 방안도
서둘러야 한다.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싱가포르의 "깨끗한 정부"도 그 바탕은 공직자에 대한
충분한 생활보장이라는 점을 지나쳐서는 안 된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10월 15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