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경기도 용인의 한 대형 실버타운.

두 사람 모두 70대에 접어든 황혼의 한 부부가 34평형짜리 널찍한 집에 살고
있다.

할아버지가 실버타운내 골프연습장에 운동을 하러 간 사이 할머니는 노인
전문 인터넷 사이트를 통해 해외 여행 상품을 검색하고 있다.

운동에서 돌아온 할아버지는 점심식사후 할머니와 함께 매장직원이 모두
중.장년층으로 구성된 인근 할인점에 쇼핑하러 간다.

"실버파워" 21세기 소비 뉴리더를 얘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계층이 노인층
이다.

새천년의 노인상은 지금의 그것과 사뭇 다른 양상을 보일 전망이다.

자식들에게 경제적으로 의존하면서 손자 손녀나 봐주고 경로당에 오가는
소극적 존재가 아니라 각종 연금의 혜택으로 젊은이들에게 뒤지지 않는
경제적 파워를 지닌 소비의 한 축으로 재정립되는 것이다.

경제적 자립으로 인해 "TONK(Two Only, No Kids)족"으로 불리는 실버세대의
"두툼한 지갑" 역시 뉴 밀레니엄의 소비 트렌드를 좌우할 중요한 변수가 되고
있는 것이다.

이인수 한서대 노인복지학과 교수는 "우리나라는 앞으로 10~20년 사이에
노인문제가 국방과 맞먹는 중대한 문제로 부상할 것"이라며 "이 시기에
노인들이 연금혜택 등으로 건국이래 최대의 재정수준에 도달하게 돼 실버
산업의 황금기가 예상된다"고 말했다.

<> 2022년엔 인구의 14%가 실버세대 =선진국들은 이미 "고령화 사회(Aging
society)"를 지나 "고령 사회(Aged society)"로 들어서 있다.

65세 이상 노인층이 전체 인구분포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14%를 넘어선
것이다.

경제활동 인구만 놓고 봤을 때 4명당 한명에 해당하는 상당한 비중이다.

우리나라는 이제 고령화 사회로 진입하는 단계다.

지난해 말 기준 65세 이상 노인은 3백20만8천명으로 전체인구의 6.9%를
차지하고 있으며 내년에 7%를 넘어서 본격적인 고령화 사회에 접어드는
것이다.

지금의 인구분포 추이가 계속될 경우 우리나라도 2022년엔 노인인구 비중이
14%를 넘어서게 된다.

이럴 경우 고령화 사회에 접어든지 불과 20여년만에 고령사회로까지 탈바꿈
하는 셈이다.

이같은 노령화 추세는 프랑스 미국 영국 등 선진국에 비해서 그 속도가
2~6배 정도나 빠른 것이다.

<> 실버파워 =선진국에서는 이미 노인층이 소비세력으로서의 위력을 유감
없이 발휘하고 있다.

영국의 경우 국부의 80%를 55세 이상의 고령층이 쥐고 있다.

뿐만 아니다.

전체소비의 40%를 담당하는 것도 그들이다.

따라서 이들 연령층을 고려하지 않는 마케팅이란 무의미할 정도다.

일본의 실버산업 규모는 연간 80조엔(약 8백조원)에 달한다.

실버산업이 가장 잘 발달해 있는 미국의 경우 그 전망이 더욱 밝다.

현재 55~35세층인 전후 베이비붐세대가 10~20년사이에 실버세대로 속속
편입되기 때문이다.

이들은 수적으로도 가장 많을 뿐 아니라 지난 20년간 미국의 소비를 주도한
계층이다.

외식과 오락에 익숙해져 있고 소비의 미덕을 아는 이들이 차차 은퇴자
대열에 합류하면서 "그레이 마켓"의 규모도 급팽창할 것이란 전망이다.

한국의 경우 실버산업은 아직 걸음마 단계에 불과하지만 성장기반은 차츰
무르익어 가고 있다.

내년 7월부터 농어촌의 국민연금 가입자에게 특례노령 연금이 지급된다.

2008년부터는 10인 이상 사업장에서 일하다 은퇴한 사람들도 노령연금을
받기 시작한다.

그때가 되면 국내에서도 선진국과 같은 규모의 그레이 마켓이 본격적으로
형성될 것으로 보인다.

노인들의 의식도 과거와 크게 달라지고 있다.

한국경제신문과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공동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재산을 가지고 있는 노인중 절반이 살아 생전에 자식에게 재산을 물려주지
않겠다고 응답했다.

한푼이라도 아껴서 자식들에게 물려주겠다는 전통적인 사고방식에 큰 변화가
일고 있음을 엿 볼 수 있다.

대신 "TONK족"이라는 말에서도 알 수 있듯 노인 본인들을 위한 소비를
늘리는 것을 긍정적으로 보는 시각이 확산되고 있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21세기 소비산업의 큰 고객층으로 부상하고 있는
실버세대를 간과할 경우 새 밀레니엄의 엘도라도를 놓치는 우를 범할 수
있다"고 말했다.

< 윤성민 기자 smyoon@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10월 14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