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경제신문과 미국의 월스트리트저널(WSJ), 영국의 파이낸셜타임스(FT)는
한-미-유럽을 대표하는 자타공인의 최고 경제지다.

이들 신문의 편집국장이 한경 창간 35돌을 맞아 대담을 가졌다.

대담은 21세기 매체로 떠오른 인터넷을 통해 이뤄졌다.

이번 대담의 주제는 새천년의 경제환경변화와 경제주체의 대응방법이었다.

새 천년에 경제여건과 기업환경이 어떻게 바뀔지, 그같은 변화에 개인과
기업, 그리고 국가는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를 모색하는 자리였다.

3대 경제지 편집책임자들은 새 천년 세계는 개인의 인텔리화, 경제사회의
디지털화, 국가의 글로벌화로 대변된다는데 의견을 같이했다.

그리고 21세기의 삶은 인터넷 활용에 성공여부가 달려 있다고 입을 모았다.

[ 참석자 : 류화선 < 한국경제신문 편집국장 >
램버트 < 파이낸셜 타임스 편집국장 >
스타이거 < 월스트리트저널 편집국장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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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류화선 한경 편집국장 =세계는 지금 빠르게 글로벌화되고 있다.

그 속도가 너무 빨라 정신이 없을 정도다.

마셜 맥루한이 얘기한 "지구촌"이라는 표현을 정말 실감하고 있다.

글로벌화의 파도에 휩쓸리다보니 "국경을 전제로 한 국가와 국민이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는가"라는 생각마저 든다.

<> 폴 스타이거 WSJ 편집국장 =글로벌화는 "지구촌 구석구석에서 최선.최고
의 것들이 그밖의 다른 지역들로 빠르게 보급.전파되는 현상"으로 정의할 수
있다.

글로벌 시대에 국가라는 울타리는 별 의미를 갖지 못한다.

"국민"보다는 "세계시민(cosmo politan)이란 말이 훨씬 더 설득력을 갖는다.

하지만 국가와 국민이 갖는 정체성은 여전히 중요하다.

<> 리처드 램버트 FT 편집국장 =동양에서는 글로벌화가 미국화를 의미하는
것으로 받아들이는 경우가 많다고 들었다.

부분적으로는 맞는 얘기다.

경제적으로나 문화적으로 미국이 세계를 리드하고 있는 것은 객관적 사실
이다.

그러나 이는 만고불변이 아니다.

10년전만 상기해봐도 그렇다.

미국은 퇴조한다고들 얘기했다.

미국 기업의 경쟁력도 별것 아니었다.

10년전 글로벌화는 일본발이었다.

<> 류 국장 =글로벌화의 주체세력도 "제국주의적 패권"처럼 순환한다는
말로 들리는데.

<> 램버트 국장 =그렇다.

글로벌화 발상지나 모델도 순환한다고 보는 것이 옳다.

미국 증시가 폭락하고 미국 경제가 휘청거린다면 미국 모델이 우월하다는
주장도 한풀 꺾일게 분명하다.

글로벌 스탠더드가 영원히 미국식 모델이라고 볼 수는 없다.

앞으로 10년뒤 유럽모델이 글로벌 스탠더드가 될 수도 있다.

아니면 아시아 모델이 될 지도 모르는 일이다.

<> 류 국장 =글로벌화는 70년대 선진국의 포디즘(Fordism)적 축적체제가
한계를 보이면서 등장했다.

본격화된 것은 90년대 들어서다.

그 배경은 인터넷의 영향이 아닌가 싶다.

20세기말에 태동한 인터넷은 한 나라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에 관한
모든 정보를 초단위로 밖으로 내보낸다.

또 나라밖의 정보도 빛의 속도로 안으로 들여오고 있다.

이렇게 보면 정보화와 글로벌화가 상호 상승작용을 일으키고 있는 셈이다.

<> 스타이거 국장 =그렇다.

새 천년에 성공적인 삶을 살기 위해서는 경제주체들이 "인터넷 마인드"로
무장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요즘 미국 주부들은 인터넷 경매업체인 "이베이(eBay)"에서 쇼핑을 하는
재미에 푹 빠져 있다.

필요한 물건을 경매 방식으로 산다.

값은 얼마든지 흥정할 수 있다.

패션.의류 등의 분야에서도 인터넷을 통한 사이버 구매가 활발하다.

개인이건 기업이건 이런 디지털 풍속도에 맞출 수밖에 없다.

이건 21세기 성공조건이라기 보다 차라리 생존조건으로 보는게 옳다.

<> 램버트 국장 =기업 경영에선 새천년의 변화가 정말 충격적이다.

전자상거래(e-commerce)는 기업의 경영방식을 통째로 바꾸어 놓고 있다.

구매나 판매 분야만 그런게 아니다.

앞으로 인사.조직관리에서도 변화의 물결을 탄 기업은 엄청난 효율성을
확보할 수 있다.

반면 그렇지 못한 기업은 낙오될 수밖에 없다.

그런 시기가 얼마 남지 않았다.

문제는 서류작업을 하던 중간 관리자들이다.

디지털 경제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이들은 흐름에서 밀려나게 돼 있다.

이들에 대한 실업대책을 세우는게 중요한 이슈가 될 것으로 본다.

<> 류 국장 =글로벌화와 정보화는 세계경제를 신자유주의 흐름으로 떠밀고
있다.

80년대 중반 "미국의 산업경쟁력 보고서"를 작성한 마이클 포터도 정부
개입을 축소할 것을 주장했다.

정부가 시장을 좌지우지하는 시대는 이미 지나갔다.

21세기 국가는 효율을 디지털과 시장에 맡기는, 말하자면 "디지털 시장형
국가"가 돼야 한다.

<> 램버트 국장 =FT의 기본 편집방침이나 개인적인 생각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시장이 모든 것을 해결할 수는 없다.

따라서 국가의 본질적 기능 자체가 없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예컨대 경제를 안정되게 유지하고 사회적.경제적 복지를 향상시키는 것은
국가의 기본적 기능이다.

또 시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때 정부가 개입하는 것은 당연하다.

<> 류 국장 =동감이다.

"시장형 국가"라 해서 정부의 역할이 없는 것은 아니다.

글로벌화가 진행되면서 초국적 기업이 많이 생기면 투명하고 공정한 룰은
더 필요해진다.

따라서 이런 분야에선 정부 기능이 오히려 강화될지도 모른다.

다만 경제시스템을 작동하는 주도권이 정부에서 시장으로 넘어가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빛의 속도로 정보가 흐르는데 관이 주도하는 과거 방식의 "통제형 국가"로
경쟁력을 가질 수 있겠는가.

<> 램버트 국장 =기업의 시장지배력 남용 행위를 방지하고 소비자를 보호
하는 일은 정부의 고유기능으로 여전히 남는다.

영국의 경우에도 외국인 투자를 적극적으로 유치하지만 경쟁 정책만큼은
엄격히 시행하고 있다.

<> 류 국장 =세계 경제가 최근 안정 회복국면에 들어섰다고는 하지만 위험한
징후들이 여전히 물밑에 도사리고 있는 것 같다.

울펜손 세계은행 총재는 최근의 금융위기를 자동차 사고에 비유한 적이
있다.

사고가 어쩌다 한번 일어나면 운전자 책임이지만 같은 유형의 사고가 반복해
일어난다면 도로의 결함으로 볼 수 있다.

지금 세계경제에는 도로의 결함이 있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

<> 스타이거 국장 =잘 디자인된 각각의 자동차들이 고속도로를 질주하고
있는 것에 세계 경제를 비유할 수도 있을 것이다.

모든 자동차들이 다 잘 달린다면 별 문제가 없다.

문제는 어떤 차는 과속하고 또 다른 자동차는 제한 속도에 훨씬 못미치는
속도로 기어가고 있는 식이라는 점이다.

이 보다 더 큰 문제는 남의 차선을 침범하는 자동차들이다.

때문에 각 자동차들이 적정한 속도를 유지하며 자기 차선을 지키도록 하는
일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 램버트 국장 =자동차들이 차선을 지키도록 하기 위해 지난번 G20 국가
(주요 20개국)들이 워싱턴에 모여서 "금융안정포럼"을 구성했다.

여기서 밝힌 국제자본시장 규제문제 등의 원칙을 준수하는게 중요하다고
본다.

좀 더 많은 정보가 공개되고 투명성도 보장돼야 한다.

위기를 겪은 아시아 국가 가운데서도 한국은 이런 개혁을 통해 위기탈출에
성공하고 있다.

인도네시아는 그렇지 못하다.

나라마다 사정이 다른 것 같다.

<> 류 국장 =그동안 미국 경제를 이끌어온 ''신경제''가 계속 갈지도 의문
이다.

최근 미국증시는 약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달러가치도 하락세다.

이를 미국경제가 침체 국면으로 접어들기 시작했다는 신호로 받아들이는
사람도 많다.

<> 스타이거 국장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경제 지표들을 보면 아직도 미국 경제는 여전히 건실함을 보여주고 있다.

최근의 증시나 외환시장 동향을 "피로 증후군"으로 해석하는 것은 지나친
과장이다.

다만 9년여에 걸쳐 초장기 호황이 이어지고 있는 만큼 언제든지 국면이
급격히 전환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다.

<> 류 국장 =시장형 국가에서는 기업형태나 산업조직이 끊임없이 진화한다.

최근 기업들은 서로 다른 두가지 방향으로 달려 가고 있는 느낌이다.

하나는 메가머저(Mega-Merger) 등을 통해 거대화해 가는 것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분사 등을 통해 소형화돼 가고 있는 것 같다.

소규모 창업(Entrepreneurship) 열기가 지구촌을 달구고 있다.

이런 진화의 동인은 "창의"와 "속도"가 아닌가 한다.

<> 램버트 국장 =최근 일본에 다녀 왔는데 NEC 닛산 소니 등 유명기업들의
변신노력이 흥미로웠다.

그들도 규모보다는 수익성 향상에 더 관심을 보였다.

과거 일본 경제나 경영행태를 볼때 놀라운 변화다.

옳은 방향이다.

인수합병 등을 통해 규모를 키운 예로 다임러크라이슬러를 들수 있다.

문제는 이 회사의 규모가 너무 커 관리가 안된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는
점이다.

시장지배전략으로 반드시 인수합병을 고집할 필요는 없다고 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전략적 제휴, 합작, 비공식적 협력 등을 통해서도 얼마든지 시장을 지배할
수 있다.

<> 스타이거 국장 ="좋은 기업"이자 "강한 기업"이 되지 않고서는 어느
기업도 오래 살아남기 힘들다.

가령 "나쁜 기업"이 "강한 기업"이 될 수는 없다고 본다.

반대로 "약한 기업"이 "좋은 기업"일 수도 없다.

기업의 복합화가 좋으냐, 아니면 독립 전문기업화가 바람직하냐에 대해서는
선뜻 정답을 내리기가 쉽지 않다.

제너럴 일렉트릭(GE)처럼 다각화를 통해 성공한 사례도 적지 않기 때문이다.

< 정리=김선태 기자 orca@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10월 14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