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상황은 끊임없이 변한다.
은행들은 경쟁력을 유지하려면 변화하는 환경에 적응해야 한다.
당국의 은행감독정책 및 수단들도 그에 맞춰 발전해야 한다.
은행감독정책은 은행업계만큼 빠르지는 못해도 변화에 대응하면서 발전해
왔다.
최근 은행업계의 흐름에는 초대형은행들이 탄생하는 등 중요한 변화들이
생겼다.
이에따라 현행 은행감독체계의 기본틀에 일부 손질을 가할 필요가 있다.
기본틀을 손질할 때 세부적인 사항도 중요하지만 전체적인 컨셉트와 윤곽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우선 은행감독정책은 은행업의 광범위하고 복잡한 업무본질에 맞춰 폭넓고
정교해야 한다.
획일적인 규제 및 감독은 은행의 크기가 천차만별이고 사업부문도 다양한
현실에선 비효율적이다.
큰 은행들간에도 조직과 경영구조는 물론 리스크관리체계가 서로 다르다.
특히 급속한 성장과 합병 등으로 탄생한 초대형 은행들은 그 실체가 점점
복잡해지고 있다.
이들이 도산이라도 한다면 국내는 물론 국제경제가 큰 구조적 위험에 처할
가능성이 있다.
이에따라 초대형은행들에 대한 감독방식을 바꿀 필요가 있다.
감독당국은 초대형은행들의 혁신과 자유경쟁을 저해하지 않도록 과격한
규제의 중간을 걸어가야 한다.
정책결정자들은 또 감독과 규제를 신중하게 풀어야 한다.
개별 은행의 위험을 줄이기 위한 과잉 규제는 각 은행들이 리스크 평가를
게을리하고 감독 당국에만 의존하게 돼 자유시장원칙이 무너지는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
그러나 지나친 자율은 은행들이 도덕적 해이(모럴 해저드)에 빠질수 있는
위험을 안고 있다.
지나친 규제를 없애면서도 모럴 해저드를 막아야 한다는 인식하에 바젤감독
위원회는 은행감독에 세가지 점을 염두에 두자고 제안했다.
그것은 시장원리와 감독의 역할 그리고 최소한의 자본통제다.
감독기관으로선 증가하는 감독업무속에서 규제완화폭을 조절하면서도 거대한
은행조직들의 복잡해져가는 행태를 제대로 감독하려면 점점 더 시장원칙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이미 많은 은행들이 상당한 양의 정보를 시장 참가자들에게 공개하고 있는
것은 은행활동에도 시장원리가 가장 중심잣대가 되고 있다는 증거다.
시장원리에 입각한 감독은 중요하며 이것이 성공을 거둔다면 정부의 강력한
감독과 규제에 은행들이 의존할 필요가 줄어든다.
그렇지만 은행들이 공개한 정보의 양과 투명성간에는 큰 차이가 있다.
이 때문에 감독의 필요성은 계속 제기된다.
투명성은 자유시장의 원리를 강화해줄 뿐 아니라 은행들로 하여금 리스크
관리 기술을 개발하도록 유도하게 된다.
은행들의 리스크관리 기술이 개선되면 감독기관은 짐을 덜게 된다.
감독기관이 은행들의 내부 리스크관리시스템에 불안감을 갖지 않게 되면
자연히 은행들의 다른 경영부문에 감독의 초점을 맞추게 될 것이다.
이 경우 은행들은 감독기관으로부터 지나친 간섭과 조사를 받지 않아도
된다.
무엇보다 리스크관리 기술을 개선하는데 더 많은 노력을 기울일 수 있다.
이는 은행내부 시스템의 투명성과 건전성을 높이고 금융시장 전체를 안정
시킬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길이다.
은행들이 매우 다양한 만큼 정부의 감독도 각 금융기관의 특성에 맞추는
소위 "맞춤 감독"을 실시해야 한다.
바젤협약에서 리스크관리문제를 소홀히 다룬 탓에 최근 몇 년간 은행들의
리스크관리 행태가 왜곡됐고 그 결과 규제가 늘어났다.
그러자 은행들은 거래를 할 때 위험을 줄이기보다는 바젤위원회가 정한
규정에 자본이 묶이지 않도록 하는 데 신경을 더 쓰고 있다.
바젤위원회는 은행자본통제에 대해 지금과는 다른 접근방식을 제안하고
있다.
은행들의 자기자본비율을 내부 리스크등급과 연결시키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것이다.
이때 은행들의 대출자산에 대한 리스크를 측정한 후 이것을 각 은행의
신용도와 어떻게 연결시킬 것인가 하는 문제가 생긴다.
이는 매우 어려운 문제로서 이 문제를 제대로 해결하려면 감독기관과
은행업계간에 긴밀한 협조가 필요하다.
은행감독과 규제는 역동적이며 발전적이어야 한다.
FRB를 비롯한 은행감독당국들은 업무수행과정에서 융통성을 발휘하고 있다.
규정을 현실에 적용할때 불합리한 것이 있으면 수정하려고 노력한다.
기본적으로 모든 규제는 유연해야 한다.
또 적용과정에서 현실에 잘 맞고 실천 가능한 것으로 점점 개선돼야 한다.
언젠가는 낡은 것이 되고 마는 특정 기술에 스스로를 묶어 버리는 기계적
이고 형식적인 자세를 버려야 한다.
< 정리=김용준 기자 dialec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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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앨런 그린스펀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이 애리조나주
피닉스에서 11일 열린 전국은행가협회 연례총회에서 행한 기조연설을 정리한
것이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10월 13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