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에게 배우는 사랑과 삶의 지혜.

시인 소설가 16명이 나무에 관한 성찰을 담아 책으로 펴냈다.

"나무 밑에 서면 비로소 그대를 사랑할 수 있다"(나무생각, 7천원).

화가 임효씨의 따뜻한 그림이 곁들여져 있어 더욱 풍요롭다.

혼자 차를 마실 때나 여행 길에 동무삼기 좋은 책이다.

소설가 이청준씨는 백목련 가지에서 꽃눈을 따는 할아버지와 꼬마의 대화를
통해 "나무의 사람됨"을 얘기한다.

"이 나무처럼 갓 옮겨 심어 힘이 약한 나무는 꽃눈들을 따줘야 한해동안
힘을 얻어 내년에는 더 아름다운 꽃을 많이 피우게 되는 거란다. 나무나
사람이나 세상에는 아쉽고 아픈 날을 참고 기다려야 더 많은 것을 얻게 되는
일이 많단다"("한해 살이 나무")

시인 안도현씨는 "나보다 오래 살아온 느티나무 앞에서는/무조건 무릎 꿇고
한 수 배우고 싶다//복숭아나무 복사꽃을 흩뿌리며 물 위에 점점이 우표를
붙이는 날은/나도 양면괘지에다 긴 편지를 쓰고 싶다"("나무생각")고
되뇌인다.

시인 이문재씨는 침엽수들이 울창하게 들어선 삼림욕장에서 "내가 거대한
뿌리와 사철 푸른 나뭇잎으로 우뚝 서 있는 것만으로 누군가에게 순결한 힘이
될 수는 없을까.

나에게로 와서 인간욕을, 나의 시로 와서 시욕을 하는 사람들이 생기게
할 수는 없는 것일까"하고 생각하다가 "상처를 이겨내는 독한 나무가
사람들을 돕듯이 스스로를 이겨내는 독한 사람이 빛이 될 수 있다"("독한
나무가 사람을 돕는다")는 깨우침을 얻는다.

소설가 송영씨는 고향 초등학교 운동장에서 수십년간 한 자리를 지켜온
팽나무로부터 위엄 가득한 성자의 모습을 발견했다는 얘기를 들려준다.

책갈피를 넘기다 보면 "새들은 나뭇가지를 베고 죽고/사람은 사랑하는 이의
팔을 베고 죽는다"는 시인 정호승씨의 잠언도 만날 수 있다.

은은한 색감의 수묵담채화 사이로 "꽃잎 지는 소리가 툭툭 가슴 한복판에서
들렸다"(서영은, "나무 아래서"), "열매는 그러므로 왕관이다"(최인호,
"뜰앞의 모과나무"), "인간들이 허덕이며 부르고 있기 때문에 그들은
달려가는 것이다"(이제하, "걷는 나무")라는 글귀들이 물소리처럼 정겹게
흐른다.

< 고두현 기자 kdh@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10월 9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