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도은 < 본사 논설고문 >

올 대입 수능시험일이 이제 한달 남짓 앞으로 다가왔다.

얼마나 많은 수험생들, 그리고 그보다 몇갑절 더 많을 학부모와 친지들이
지금 순간 애를 태우고 있을까.

제도교육 12년의 성과가 이날 하루 몇 시간동안에 결판나는 현실앞에 우리의
젊은이들은 속수무책 오직 그 순간을 위해 살다시피 한다.

우리네 교육이 안고있는 문제를 얘기하자면 한도 끝도 없다.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모를 지경이다.

늘 개혁한다면서 개선인지 개악인지 모를 손질만 연례행사처럼 되풀이하고
있다.

대학입시만 해도 수능이 쉬웠다 어려웠다, 내신비율은 이랬다 저랬다,
논술과 제2외국어는 또 어쩌고 저쩌고 그야말로 럭비공이고 기다려봐야
아는 식이다.

대학 진학부터가 요령과 운의 게임이다.

한마디로 우리 교육은 불신받고 있다.

대학뿐 아니라 초.중.고교에 이르기까지 질과 양 모든 면에서 문제 투성이
속에 꾸려지고 있다.

그래서 국내가 아닌 국외로 눈을 돌리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이민과 해외유학이 그것이다.

특히 누구나 형편만 허락하면 유학을 한번쯤 생각해 본다.

모두가 그런건 아니지만 많은 사람들이 2세 교육을 이민의 변으로 꼽는다.

두말할 것 없이 그 밑바탕에는 우리의 교육현실에 대한 깊은 불신감에다
장래의 개선가망에 대한 짙은 불확실성과 불안감이 깔려있다고 봐야 한다.

경우는 좀 다르지만 유학도 보다 나은 내용의 교육을 보다 나은 환경에서
받으려는 것이다.

가능하면 대학부터, 그렇지 않은 경우에도 석.박사만큼은, 특히 MBA나
박사학위 포스트닥터만큼은 외국에서 받아야 제격이고 귀국해서도 인정을
받는다는 사고가 널리 퍼져있다.

IMF사태로 한때 움츠러드는 듯했던 대학생들의 해외 어학연수 바람이 지난
여름 되살아났고 중도 귀국설까지 나돌던 자비유학생 행렬도 어느새 옛말이
되었다고 한다.

그뿐이 아니다.

언제부터인지 중고생의 연고 혹은 자비유학이 소리소문없이 꽤 넓게 번지고
있는 모양이다.

유학 알선기관들의 안내광고를 보면 고교지망생에 관한 내용도 심심찮게
들어있다.

중.고생의 해외유학은 예체능계에 한해 극히 예외적으로만 허용되고 있다.

그런데도 당국이 파악하기로는 지난해 정식으로 정부허가를 받아 유학간
고교생은 고작 1백명에 불과한데 반해 불법으로 가 있는 학생이 2천5백명이나
된다니까 암직하다.

그래서 당국은 대상을 인문.자연계에까지 확대하고 허가조건도 완화할 것을
검토중이라는 소식이 들린다.

이와는 별도로 병무청은 한 고교유학생이 낸 소송에서 패하자 "조기유학자에
대한 국외여행 허가제한" 규정 훈령을 최근 풀었다.

이를 계기로 남학생의 경우 병역제약 없이 조기유학할 수 있는 길도 트였다.

이민도 한때는 역이민설까지 나돌 정도로 주춤해졌었다.

하지만 최근들어 다시 활기를 띠고 있단다.

이를테면 이민허가 신청이 97년 1만2천여건, 98년 1만4천건에서 금년에는
1만6천건으로 불어날 전망이라고 한다.

IMF사태 이후의 실직탓도 있지만 삭막한 교육현실에서 벗어나고픈 게 또
다른 동기라는 설명이다.

지난 여름 "씨랜드 참사"사건 때 7살난 아들을 잃은 어느 주부(전 필드하키
국가대표선수)는 4살난 둘째만이라도 잘 키우기 위해 이민을 결심했다 해서
눈길을 끈바 있다.

아무튼 이민도 유학도 대상국가와 기회 모두 확대되는 추세에 있다.

또 장래에도 우리의 교육환경과 내용에 그야말로 획기적인 변화와 개선이
없는한 하나의 무시못할 사회흐름으로 계속 이어질 게 분명하다.

이민과 유학을 통한 국외교육은 국가장래를 위해 역기능보다는 순기능이 더
많다고 봐야한다.

우수 두뇌와 인재의 유출위험이 없지않고 언젠가는 학생이 모자랄 날이 올
국내 대학교육의 장래가 걱정 안되는건 아니다.

하지만 그런 위험과 걱정을 깨달아 우리 교육, 특히 대학들이 서둘러 경쟁력
을 기른다면 결과적으로 국내교육의 장래에 플러스가 될 것이다.

실은 대다수 유학생은 물론 교포2세들도 기회만 주어지면 국내에 들어와
활동할 것이다.

취직이 바늘구멍이라지만 21세기 글로벌시대를 준비하는 인력시장에서는
이미 영어와 국제감각이 풍부한 각종 전문직 종사자의 인기가 높다.

그런 경향은 갈수록 더할 것이다.

미국쪽에서 집계 발표한 지난해 우리나라 재미 유학생총수는 4만2천8백90명
으로 각각 4만7천명 안팎인 일본 중국 다음으로 많다.

인구비율로 따진다면 단연 으뜸이다.

이들이 장차 어디서 일하건 국가 장래에 큰 자산이다.

그래도 국외교육에 쏠리는 열기는 정상이 아니다.

언젠간 식어야 한다.

그러자면 국내교육이 변해야 한다.

특히 대학들이 교육부의 지원과 간섭 대신 제발로 서고 제힘으로 경쟁력을
키워야 한다.

BK21사업 경과를 지켜보노라면 그게 아직은 무망한 주문인 것 같아
안타깝지만.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10월 8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