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병모(50) 특별검사는 "걱정이 앞선다"면서도 의혹규명을 다짐했다.
그는 사실 중앙무대에서는 잘 알려져 있지 않은 인물이다.
판사경력 8년만인 지난 86년 서울에서 변호사 사무실을 냈다.
지난 91년 느닷없이 사무실을 제주도로 옮겼고 현재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의 부회장을 맡고 있다는 게 전부다.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적이 없는 조용한 판사였다.
하지만 재야법조계에서는 알만한 사람은 다아는 "소신파"로 통한다.
80년대 청주지법과 제천지원장으로 재직할 때 검찰과 빚은 갈등은 유명한
일화로 전해진다.
그는 불구속 재판이 원칙인데도 관행적으로 구속이 횡행하는 것을
못마땅해 했다.
이같은 소신에 따라 도주우려가 없다고 판단되는 피고인들을 무더기로
석방해 줬다.
관내 검찰과 충돌이 빚어진 것은 말할 것도 없다.
그를 아는 사람들은 "그만큼 원칙에 충실하다는 뜻"이라며 "한번 뜻은
좀초럼 굽히지 않는 성격이어서 특별검사로는 적임자"라고 평가한다.
지난 91년 서울생활을 접고 아무 연고도 없는 제주도로 내려간 얘기도
회자한다.
이곳에서 그는 변호사 활동과 환경운동 등 시민단체 활동을 병행하고 있다.
자신의 말로는 "교통지옥이 싫었고 과외가 판치는 서울에서 아이들을
키우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게 이유다.
그러나 주변 사람들의 말은 다르다.
사건수임을 두고 "이전투구"양상을 띠었던 당시 서울 법조타운의 행태에
염증을 느껴 무연고 지역으로 떠났다는 것.
그는 누구보다 인권활동에 많은 관심을 가져왔다.
타계한 조영래 변호사와 함께 민변의 전신인 "정법회"를 창립했다.
또 환경운동연합의 모태가 된 공해반대단체를 만드는데도 발벗고 나섰다.
그럼에도 지금 갖고 있는 "감투"는 민변부회장과 제주환경운동연합 공동
의장이 고작이다.
전남 강진 출신이며 서울고와 서울법대를 나왔다.
청주지법, 인천지법에서 판사를 지낸 뒤 86년 서울에서 변호사로 개업했다.
사시 16회로 박주선 청와대 법무비서관과 연수원 동기다.
< 고기완 기자 dadad@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10월 8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