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M] (특파원 코너) 도요타, 세습경영 결별 선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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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27일 도쿄시내 오쿠라호텔의 ''헤이안의 방''.
큰 키의 오쿠다 히로시 도요타 회장, 조 후지오 사장, 도요타 쇼이치로
명예회장이 입구에서 손님을 맞고 있었다.
오부치 게이조 총리를 비롯 각장관 야당당수 경제계 인사 등 거물급
1천6백여명이 오쿠다 회장과 조 사장의 취임을 축하하기 위해 몰려들었다.
이날 행사는 인삿말도 없이 곧바로 파티에 들어갔다.
3명 수뇌진 가운데 조 사장쪽이 가장 붐볐다.
오쿠다 사장에 이은 2대째 샐러리맨사장의 등장으로 도요타의 권력구조가
바뀌었음을 실감나게 만들었다.
도요타자동차는 일본의 대표적인 오너기업이다.
창업주인 도요다집안의 성을 그대로 상호로 사용하고 있다.
지난 52년 57세로 돌아간 기이치로 창업주를 비롯 중흥의 기수 에이지
(창업주), 일본자동차의 얼굴 쇼이치로(창업주 장남), 다쓰로(차남)등
도요다집안 전사장들은 이 회사를 세계3위의 자동차회사로 키워냈다.
도요타자동차는 일본식 기업경영의 대표적인 성공사례로 꼽힌다.
그런 만큼 도요다집안에 대해 언급하는 것은 터부시돼왔다.
지난 37년 창업이래 지금까지의 대물림경영에 대해서도 별문제가 제기되지
않았다.
그런데 이같은 상황이 갑자기 바뀌었다.
쇼이치로 회장이 명예회장으로 일선에서 물러나는 등 도요다 집안사람들이
자동차의 대표권에서 완전히 손을 뗐다.
지난 82년 도요타자동차공업과 도요타자동차판매가 합병, 현재의 회사로
출범한 이래 처음있는 일이다.
세계자동차의 메가머저시대에 대비, 스스로 오너체제에 종지부를 찍는
결단을 내렸다.
오쿠다 회장은 "21세기에 대비해 도요타와 그룹의 이상을 실현할수 있게
톱을 포진시켰다"고 설명했다.
정실주의보다는 "자본의 논리"를 관철시킬수 있는 개혁에 나설 것임을
분명히 한 것이다.
그는 도요타개혁의 선봉자다.
뇌출혈로 쓰러진 다쓰로 전사장에 이어 94년 9월 톱에 오른 이후 도요다색깔
줄이기를 시도해 왔다.
미국공장건설 프랑스진출등 글로벌화를 추진했다.
"돌다리도 두드려보고 건넌다"는 도요타 경영방식을 "스피드경영"으로
바꿨다.
자본논리에 바탕을 둔 그룹일체경영을 추진해왔다.
계열사인 다이하쓰를 자회사로 만들고 히노자동차 주식을 사들였다.
창업자쪽에서도 개혁에 전혀 관심이 없었던 것은 물론 아니다.
도요타에는 무사안일주의가 만연했었다.
우수한 인재는 많았지만 총대를 메고 나서는 사람이 없었다.
"도요다집안의 도요타"라는 논리가 지배했었다.
이러한 사풍에 메스를 대려고 시도한 인물은 쇼이치로 명예회장.
직기로 사업을 일군 도요타방적의 사요시와 자동차를 창업한 기이치로에
이은 가문의 3세대 경영인인 그는 국내에서 아무리 차를 팔더라도 부친을
뛰어넘을수 없음을 깨달았다.
그래서 일찍이 밖으로 눈을 돌렸다.
해외진출이나 신규사업투자에 열중했다.
경영을 맡았던 10년 동안은 쾌속항진의 연속이었다.
취임 첫해를 빼고는 국내셰어가 40%를 밑돈 적이 없었다.
도요타를 일본의 간판기업으로 변신시켰다.
그러나 개혁을 끝내지는 못했다.
그 마무리를 오쿠다 회장, 조 사장등 전문경영인에게 넘긴 것이다.
도요타의 과제는 창업주와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하느냐는 것.
창업주 가족의 출자비율은 2%에 불과하다.
그러나 도요타는 창업주를 중심으로 그룹이 뭉쳐왔다.
창업주의 힘을 빌리지 않고는 자본의 경영을 실현하기가 쉽지않을 것이라는
게 관계자들의 지적이다.
실제로 이번 그룹인사때 일부계열사가 회장단영입에 강력 반발했었다.
결국 쇼이치로 회장이 나서 불씨를 껐다.
도요다의 위력이 여전함을 증명해 보인 것이다.
"정실보다는 자본의 논리".
오쿠다 회장의 논리는 명쾌하다.
"도요다 집안의 지분은 2%. 해외투자자들에게 도요타가 도요다 집안회사라고
설명할수가 없다"는 것이다.
오쿠다 회장은 최대 승부수를 던졌다.
바로 지주회사로의 전환이다.
무명의 조 사장 발탁도 지주회사로의 이행을 무리없이 진행시키기 위한
포석이다.
지주회사로 탈세습경영과의 완전결별을 시도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지난달 29일 뉴욕과 런던증권거래소에 도요타주식을 상장시켰다.
자본의 국제화에 시동을 걸었다.
"창업가 지배는 3대가 한계"라는 정설이 도요타에서도 검증될지 주목된다.
< 도쿄=김경식 특파원 kimks@ dc4.so-net.ne.jp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10월 7일자 ).
큰 키의 오쿠다 히로시 도요타 회장, 조 후지오 사장, 도요타 쇼이치로
명예회장이 입구에서 손님을 맞고 있었다.
오부치 게이조 총리를 비롯 각장관 야당당수 경제계 인사 등 거물급
1천6백여명이 오쿠다 회장과 조 사장의 취임을 축하하기 위해 몰려들었다.
이날 행사는 인삿말도 없이 곧바로 파티에 들어갔다.
3명 수뇌진 가운데 조 사장쪽이 가장 붐볐다.
오쿠다 사장에 이은 2대째 샐러리맨사장의 등장으로 도요타의 권력구조가
바뀌었음을 실감나게 만들었다.
도요타자동차는 일본의 대표적인 오너기업이다.
창업주인 도요다집안의 성을 그대로 상호로 사용하고 있다.
지난 52년 57세로 돌아간 기이치로 창업주를 비롯 중흥의 기수 에이지
(창업주), 일본자동차의 얼굴 쇼이치로(창업주 장남), 다쓰로(차남)등
도요다집안 전사장들은 이 회사를 세계3위의 자동차회사로 키워냈다.
도요타자동차는 일본식 기업경영의 대표적인 성공사례로 꼽힌다.
그런 만큼 도요다집안에 대해 언급하는 것은 터부시돼왔다.
지난 37년 창업이래 지금까지의 대물림경영에 대해서도 별문제가 제기되지
않았다.
그런데 이같은 상황이 갑자기 바뀌었다.
쇼이치로 회장이 명예회장으로 일선에서 물러나는 등 도요다 집안사람들이
자동차의 대표권에서 완전히 손을 뗐다.
지난 82년 도요타자동차공업과 도요타자동차판매가 합병, 현재의 회사로
출범한 이래 처음있는 일이다.
세계자동차의 메가머저시대에 대비, 스스로 오너체제에 종지부를 찍는
결단을 내렸다.
오쿠다 회장은 "21세기에 대비해 도요타와 그룹의 이상을 실현할수 있게
톱을 포진시켰다"고 설명했다.
정실주의보다는 "자본의 논리"를 관철시킬수 있는 개혁에 나설 것임을
분명히 한 것이다.
그는 도요타개혁의 선봉자다.
뇌출혈로 쓰러진 다쓰로 전사장에 이어 94년 9월 톱에 오른 이후 도요다색깔
줄이기를 시도해 왔다.
미국공장건설 프랑스진출등 글로벌화를 추진했다.
"돌다리도 두드려보고 건넌다"는 도요타 경영방식을 "스피드경영"으로
바꿨다.
자본논리에 바탕을 둔 그룹일체경영을 추진해왔다.
계열사인 다이하쓰를 자회사로 만들고 히노자동차 주식을 사들였다.
창업자쪽에서도 개혁에 전혀 관심이 없었던 것은 물론 아니다.
도요타에는 무사안일주의가 만연했었다.
우수한 인재는 많았지만 총대를 메고 나서는 사람이 없었다.
"도요다집안의 도요타"라는 논리가 지배했었다.
이러한 사풍에 메스를 대려고 시도한 인물은 쇼이치로 명예회장.
직기로 사업을 일군 도요타방적의 사요시와 자동차를 창업한 기이치로에
이은 가문의 3세대 경영인인 그는 국내에서 아무리 차를 팔더라도 부친을
뛰어넘을수 없음을 깨달았다.
그래서 일찍이 밖으로 눈을 돌렸다.
해외진출이나 신규사업투자에 열중했다.
경영을 맡았던 10년 동안은 쾌속항진의 연속이었다.
취임 첫해를 빼고는 국내셰어가 40%를 밑돈 적이 없었다.
도요타를 일본의 간판기업으로 변신시켰다.
그러나 개혁을 끝내지는 못했다.
그 마무리를 오쿠다 회장, 조 사장등 전문경영인에게 넘긴 것이다.
도요타의 과제는 창업주와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하느냐는 것.
창업주 가족의 출자비율은 2%에 불과하다.
그러나 도요타는 창업주를 중심으로 그룹이 뭉쳐왔다.
창업주의 힘을 빌리지 않고는 자본의 경영을 실현하기가 쉽지않을 것이라는
게 관계자들의 지적이다.
실제로 이번 그룹인사때 일부계열사가 회장단영입에 강력 반발했었다.
결국 쇼이치로 회장이 나서 불씨를 껐다.
도요다의 위력이 여전함을 증명해 보인 것이다.
"정실보다는 자본의 논리".
오쿠다 회장의 논리는 명쾌하다.
"도요다 집안의 지분은 2%. 해외투자자들에게 도요타가 도요다 집안회사라고
설명할수가 없다"는 것이다.
오쿠다 회장은 최대 승부수를 던졌다.
바로 지주회사로의 전환이다.
무명의 조 사장 발탁도 지주회사로의 이행을 무리없이 진행시키기 위한
포석이다.
지주회사로 탈세습경영과의 완전결별을 시도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지난달 29일 뉴욕과 런던증권거래소에 도요타주식을 상장시켰다.
자본의 국제화에 시동을 걸었다.
"창업가 지배는 3대가 한계"라는 정설이 도요타에서도 검증될지 주목된다.
< 도쿄=김경식 특파원 kimks@ dc4.so-net.ne.jp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10월 7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