앨런 그린스펀 <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 >

일본이 경제를 회복시키기 위해선 무엇보다 금융구조를 다양화해야 한다.

일본정부는 그동안 주목할만한 경기회복 조치들을 실시했다.

이 덕에 어느정도 회복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금융구조 개혁분야에서는 거의 진전이 없다.

특히 금융구조개혁중 금융시스템 다양화는 경기회복 촉진을 위해 꼭 필요
하다.

채권시장에서 수시로 자금을 조달하는 등 여러 형태의 창구를 활용하는
미국기업들에 비해 일본기업들은 은행자본에 지나치게 의존하고 있다.

일본의 경기불황이 10년씩이나 장기화하면서 경기회복이 지연되고 있는 것은
이 때문이다.

따라서 일본금융당국은 기업들이 은행뿐 아니라 다른 금융시장에서도 돈을
끌어다 쓸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자금창구를 다양화해 신용을 창출해야 한다는 얘기다.

일본 금융구조의 특징은 은행을 중심으로 기업들이 계열화돼 있다는 점이다.

이로인해 기업들이 자금을 융통할 수 있는 통로는 은행뿐이다.

이는 자산가치 폭락과 같은 문제를 초래하고 이는 곧바로 신용경색을 야기할
수 있다.

일본의 경우 자금창구의 대안부재가 심각한 신용경색의 원인이다.

일본은행은 "제로(0)금리" 정책을 도입하는 등 시장개입을 통해 유동성을
높이려 하고 있다.

그러나 가시적인 효과는 별로 없다.

일반기업과 개인에 대한 은행대출이 활발히 이뤄져 자금이 실제 시중으로
풀리고 내수가 진작되고 있다는 증거를 찾아보기 힘들다.

일본의 금융위기는 미국이나 스웨덴의 과거 사례보다 훨씬 가혹한 대가를
치를 수 있다.

이의 대안은 금융구조를 다양화하는 것이다.

그래야 경제쇼크의 파급효과를 최소화할 수 있다.

신흥시장의 금융시장 역시 일본과 같이 "스페어 타이어"가 없다.

모든 금융활동이 은행에 집중돼 있고 이를 대체할 만한 시장이 없다.

은행권이 조금이라도 흔들거리면 나라경제 전체가 휘청댄다.

지난번 신흥국들의 금융위기는 금융권에 대한 정부의 감독소홀과 건전한
금융구조를 만드는 데 정부가 관심이 없었기 때문이다.

금융위기는 그동안 자본시장규모가 협소한 나라에서 집중적으로 발생했다.

지난 90년 미국에서도 금융권의 신용경색으로 기업들이 자금조달에 애를
먹었다.

그러나 다양한 금융구조로 "폭풍(신용경색)"을 잠재울 수 있었다.

당시 벤처캐피털 등 다른 자본시장의 지원이 없었다면 기업들은 혹독한
시련을 겪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가깝게는 작년 8월 러시아가 디폴트를 선언했을 때도 롱텀캐피털매니지먼트
등 많은 헤지펀드들이 쓰러지는 등 미국은 심각한 신용경색에 직면했다.

신용등급이 높은 우량기업들도 시장에서 자금을 융통할 수가 없어 쩔쩔맸다.

전문가들은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가 3차례에 걸쳐 0.75% 포인트나 금리를
내린 덕에 혼란을 막았다고 평가하고 있다.

금리인하 조치가 미국에서도 발생할 수 있었던 환란을 사전에 예방하는데
일조한 것은 사실이다.

그렇지만 FRB의 역할은 거기에 그쳤을 뿐이다.

러시아 디폴트선언에 따른 금융위기를 미연에 방지할 수 있었던 보다 근본적
인 요인은 미국의 금융구조가 다양하다는 사실이다.

신용경색으로 더 이상 채권시장에서 돈을 끌어다 쓸 수 없었던 기업들은
다른 경로를 통해 필요자금을 획득, 신용을 창출할 수 있었다.

다양한 금융구조덕에 FRB도 과감하게 금리를 내릴 수 있었다.

호주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호주는 동남아 나라들과 경제교류가 많아 금융위기에 빠져들 수도 있었지만
위기를 겪지 않았다.

이는 호주 금융권이 잘 발달된 다양한 구조로 이뤄졌기 때문이다.

(서방국 기준에서) 정상적인 금융구조의 부재로 결국 아시아와 러시아 등
신흥시장의 금융위기 충격은 예상했던 것보다 더 강했다.

다양한 금융구조와 함께 중요한 게 금융구조의 건전성을 확보하기 위한
"책임기준"을 명확히 하는 것이다.

각 기업의 여수신 조건을 분명히 하는 것은 물론 자산보호 계약이행 파산
절차 등의 법규를 엄격히 적용해야 한다.

아시아 금융구조개선의 최대 걸림돌은 지연과 혈연을 중시하고 체면에
얽매이는 동양 특유의 문화적 정서다.

예컨대 대부분 서방국들이 도입,적용하고 있는 파산절차법이 체면문제
때문에 아시아 국가에는 거의 없다.

돈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도 장애물이다.

러시아만 해도 사회주의체제의 교육탓에 재산의 사유화를 아직까지 부정적
으로 보는 사람들이 많다.

아시아 각국은 금융위기를 완벽하게 치유하고 건전한 금융구조를 갖추기
위해 금융구조의 다양성과 책임기준 제정을 추진하고 정서적인 장애를
극복해야 한다.

< 정리=방형국 기자 bigjob@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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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앨런 그린스펀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이 지난달 27일
국제통화기금의 한 세미나에서 행한 기조연설이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10월 1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