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신] '10월의 호국인물'에 김시민 장군 선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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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기념사업회는 29일 임진왜란 당시 왜군을 맞아 혁혁한 전공을 세운 뒤
전사한 김시민 장군을 "10월의 호국인물"로 선정, 발표했다.
장군은 1578년 무과에 급제, 부평부사와 진주판관으로 일하다 1592년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진주목사 대리직을 맡아 진주방향으로 침입한 왜적을
격파했다.
이 싸움엔 의병장 이달, 곽재우 등이 합세했다.
장군은 이어 왜군이 점령했던 고성과 창원 등을 탈환한 뒤 의병장 김면의
원병요청을 받아 정병 1천여명을 이끌고 거창으로 진출, 서남진하던 왜적을
크게 무찔렀다.
진주목사로 승진한 장군은 그해 12월 26일 진주성을 포위한 왜군 2만여명을
3천8백여 병력으로 치열한 접전끝에 퇴각시켰으나 적탄에 맞아 순국했다.
조정에서는 장군을 경상우도 병마절도사에 제수했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9월 30일자 ).
전사한 김시민 장군을 "10월의 호국인물"로 선정, 발표했다.
장군은 1578년 무과에 급제, 부평부사와 진주판관으로 일하다 1592년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진주목사 대리직을 맡아 진주방향으로 침입한 왜적을
격파했다.
이 싸움엔 의병장 이달, 곽재우 등이 합세했다.
장군은 이어 왜군이 점령했던 고성과 창원 등을 탈환한 뒤 의병장 김면의
원병요청을 받아 정병 1천여명을 이끌고 거창으로 진출, 서남진하던 왜적을
크게 무찔렀다.
진주목사로 승진한 장군은 그해 12월 26일 진주성을 포위한 왜군 2만여명을
3천8백여 병력으로 치열한 접전끝에 퇴각시켰으나 적탄에 맞아 순국했다.
조정에서는 장군을 경상우도 병마절도사에 제수했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9월 30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