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0년 서울.

목동에 사는 김형민씨는 아침에 눈을 뜬뒤 네트워크 컴퓨터를 켰다.

리모컨으로 은행버튼을 눌렀다.

각 은행의 예금금리가 화면에 나타났다.

B은행의 금리가 어제보다 0.01%포인트 올랐다.

지금 돈이 들어있는 A은행보다 유리한 조건.

그는 B은행의 고객상담원을 PC로 불러냈다.

꼬치꼬치 따져물은 뒤 돈을 옮기기로 결정했다.

버튼 몇개를 눌러 이체했다.

이날 오후.

쇼핑을 마친 김형민씨는 스마트 카드로 결제했다.

그러나 잔액이 부족하다는 소리가 카드에서 울렸다.

그는 핸드폰을 꺼냈다.

핸드폰에 카드를 끼운뒤 은행과 전화로 접속했다.

그는 단추몇개를 눌러 카드에 돈을 입금시켰다.

그리고 돈을 지급했다.

여기까지 걸린 시간은 단 1분.

결코 허황된 얘기가 아니다.

조만간 우리앞에 닥칠 일들이다.

"은행 지점은 앞으로 10년내에 모두 없어질 것"(보스턴 금융연구소 제임스
데이 이사)이라는 극단적인 전망도 나오고 있다.

그 이유는 시티은행 B 리스턴 회장의 신 라이벌론에서 잘 드러난다.

그는 "시티은행의 최대 라이벌은 체이스 맨해튼은행이 아닌 바로 IBM"
이라고 일찌기 말했다.

시티은행이 IBM을 두려워할 수 밖에 없는 이유.

그것은 따지고 보면 간단하다.

돈이 변해서다.

보이지도 않고 만질수도 없게 됐다.

더이상 지갑속에 넣을 수 없다.

금고도 필요 없어졌다.

대신 돈은 컴퓨터속에, 핸드폰속에 내장된다.

정확히 말하면 전화선이나 전파를 타고 들락거린다.

변화의 툴은 테크놀로지다.

볼 수 없는 돈(invisible money)은 이미 전통적인 의미의 화폐를 몰아내고
있다.

1원 5원 10원짜리 동전은 이미 찾아보기 어렵다.

공중전화카드에 밀렸고, 버스카드에 자리를 내주며 자취를 감췄다.

지폐의 운명도 풍전등화다.

대신 등장한 게 플라스틱 머니인 스마트 카드다.

"은행에서 필요로 하는 종업원은 회계학이나 경제학을 전공한 MBA 출신이
아니라 컴퓨터 엔지니어"(B 리스튼 시티은행 회장)라는 말은 과장된 것이
아니다.

스마트카드의 출현은 곧 "전자화폐 시대"의 개막을 의미한다.

인터넷의 발전과 정보통신기술의 진보가 지향하는 것은 적층(적치)사회다.

하나로 통합된 시스템을 추구한다.

통합의 도구는 네트워크다.

따라서 전자화폐는 단순히 인터넷쇼핑이나 전자상거래와 같은 경제행위의
도구가 아니다.

삶의 패턴과 질 자체를 변화시킬 혁명의 툴이다.

변화는 다양한 방면에서 일어난다.

소비패턴은 물론 재테크까지도 예외가 아니다.

물론 이자를 챙기거나 주식의 매매차익을 구하는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 양태가 훨씬 격렬해질 것이란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전자화폐의 신속성과 비가시성(invisibility), 그리고 안전성은 필연적
으로 "머니 워(money war)"를 일으킬 것"(존 나이스비트)이라는게 미래학자들
의 전망이다.

신속성은 주식거래에서 절대적으로 필요한 요소다.

적절한 타이밍에 사고 파는게 수익률을 결정한다.

네트워크시대에는 온갖 정보가 쏟아진다.

컴퓨터만 켜면 지구 반대편에 있는 국가의 기업동향이라도 손바닥처럼
알 수 있다.

네트워크의 장점은 리얼타임에 있다.

그날 사서 그날 파는 "당일치기 거래(day trading)"가 주식투자의 일반적인
패턴이 될지도 모른다.

금리차에 따라 돈이 은행 사이를 매일 오가는 것도 흔한 일이 될 수 밖에
없다.

네트워크 화폐의 비가시성 역시 머니 워를 촉발시킨다.

화폐는 교환가치라는 관념을 물체화한 것이다.

물체화했다는 것은 수시로 눈과 손으로 확인할 수 있다는 의미다.

그러나 네트워크 시대의 화폐는 보거나 만질 수 없다.

따라서 보다 유출입이 자유로울 수 밖에 없다.

안전성은 기존 화폐에 비해 훨씬 높다.

신용카드를 주워도 비밀번호를 모르면 사용할 수 없듯이 스마트카드에도
다양한 보안장치가 내재된다.

지문인식, 홍채인식 등의 첨단기술은 금고에 넣는 것보다 더 안전한 화폐를
유통시킬 것이다.

전자화폐의 이런 특성은 개인들간에 머니 워를 일으키는데 그치지 않는다.

사회전체를 머니 게임으로 밀어넣을게 분명하다.

징후는 이미 나타났다.

미국 AT&T는 돈을 빌려주는 여신업무나 보험업무를 취급하기 시작했다.

제조업체와 서비스업체도 금융업에 진출했다.

미국에서는 자동차 메이커인 제너럴모터스(GM)와 포드, 전자업체인 제너럴
일렉트릭(GE), 운수업체인 그레이하운드, 철강제조회사인 내셔널 스틸,
악기 제조업체인 볼드윈 피아노가 금융서비스업에 발을 담구고 있다.

이같은 변화는 원인은 바로 화폐의 네트워크화다.

점포가 없이도, 대출서류에 도장찍을 서류가 없이도 온라인에서 모든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는게 키포인트다.

더구나 돈을 직접 건네거나 은행에 와서 찾아갈 필요도 없다.

집안에 앉아 간단한 조작으로 PC를 통해 돈을 입출금할 수 있어서다.

"보이지 않는 돈이 흐르는 사회"

뉴 밀레니엄의 변화는 바로 "돈의 혁명"에서 발원된다는 얘기다.

< 조주현 기자 forest@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9월 28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