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 밀레니엄을 앞두고 세기말에 맞는 마지막 추석.

태풍 "바트(BART)"의 심술로 하늘은 잔뜩 찡그린 얼굴이지만 고향길을
재촉하는 근로자들의 표정은 밝다.

"IMF의 터널"에서 어느정도 빠져나온 데다 경기가 좋아져 추석 보너스가
두둑해 졌기 때문이다.

지난해 보너스는 커녕 월급조차 제때 받지 못하고 혹시 해고당하지나
않을까 마음졸이던 것과는 비교도 안된다.

이에 따라 산업현장에도 오랜만에 웃음꽃이 활짝 폈다.

22일 서울 구로산업단지공단 한 켠에 자리잡은 무선전화기 생산업체인
맥슨전자.

맥슨은 전 직원에게 추석 상여금 1백%를 지급했다.

지난해 워크아웃(기업구조개선작업) 대상기업으로 선정됐던 이 회사는
노사 협력과 뼈를 깎는 구조조정을 통해 경영을 정상화시켜 추석 보너스의
의미가 더욱 각별했다.

비서실에 근무하는 김정희(28.여)씨는 "지난해와 달리 이번 추석에는 부모님
용돈을 조금은 장만했다"면서 "다음 달이면 지난해 받지 못했던 상여금도
모두 받게 된다"고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맥슨은 작년부터 밀린 상여금 5백%를 다음 달에 일괄 지급할 계획이다.

기획실에 근무하는 박대영(29)씨는 "작년 추석에는 명절 분위기를 전혀
느낄 수 없었다"면서 "올해에는 회사 전체가 축제 분위기"라고 전했다.

인천지역 대우 협력업체들도 극심한 자금난에도 불구하고 대부분 추석
상여금을 지급했다.

대우중공업에 부품을 납품하고 있는 인천 남동공단내 S기업의 경우 사장이
급전을 마련, 직원 60명에게 기본급 1백%의 상여금을 나눠줬다.

또다른 대우전자 부품 납품업체인 H화학 역시 매우 힘든 경영여건 속에서도
근로자 80여명에게 추석 상여금을 1백%를 지급했다.

대우자동차에 기어 등의 부품을 납품하고 있는 S공업도 1백여 직원들의
사기를 높여주기 위해 50%의 상여금을 마련했다.

대우자동차에 시트를 납품해온 고려도 자금부족으로 법정관리에 들어갔으나
50%의 추석 정규 보너스를 8백여명의 직원에게 지급했다.

인천 남동공단에 위치한 도금업체 금강금속 종업원 50여명도 이날 "뜻밖의"
추석 상여금을 받아들고는 환한 미소를 지었다.

변석규(54) 사장은 "지난해만 해도 추석 보너스는 생각도 할수 없었지만
최근 경기가 회복되면서 매출이 1백%나 늘어나는 등 성과가 좋아져
특별상여금을 지급했다"며 "이대로만 간다면 올 연말에도 성과급을 줄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풍성한" 추석은 수치로 확인된다.

한국산업단지공단이 최근 전국 1천3백74개 업체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9백90개사(72.1%)가 올 추석에 상여금을 지급한 것으로 나타났다.

상여금을 주지 못했던 업체가 전체의 53.4%에 달했던 작년과는 확연히
달라졌다.

그런가 하면 최근 특수를 누리고 있는 반도체 업계는 주문이 밀려 근로자들
이 추석연휴도 반납한 채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삼성전자 기흥 반도체공장, 현대전자 이천공장, 현대반도체 청주.구미공장
등은 연휴 동안에도 일부 라인을 정상가동한다.

특히 반도체, 박막액정표시장치(LCD), 통신기기 등 전자업종은 추석연휴중
생산라인을 24시간 가동하기로 했다.

삼성전자의 한 직원은 "올 추석에는 기숙사에서 동료들과 함께 차례를 지낼
계획"이라면서 "고향에는 못가지만 밀려드는 일감에 마냥 기분이 좋다"고
말했다.

< 이건호 기자 leekh@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9월 23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