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챌린저] '인터넷경매' 오혁 사장 .. 전자상거래 '돌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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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용과 노력"은 가장 일반적인 사업 성공비결로 꼽힌다.
하지만 이를 실천하기란 쉽지 않은 법.
인터넷경매의 오혁(38) 사장은 가장 단순한 이 원칙을 묵묵히 실천,
사이버 경매 시장의 최강자로 우뚝 섰다.
오 사장은 동국대 일어일문학과 출신.
졸업 후 자동차 시트커버 세일즈맨으로 직장생활을 시작했다.
하루도 쉬지 않고 전국 대리점을 개척했다.
매출은 급성장했다.
주문이 몰려 물건이 모자랄 정도였다.
그런데 문제가 발생했다.
회사가 덤핑물건에 상표만 붙여 팔기 시작한 것.
제품질의 차이가 나 편법은 곧 탄로가 났다.
속은 것을 안 대리점들의 항의가 쏟아졌다.
오 사장은 자신을 믿었던 대리점 주인들에게 일일이 사과하며 불량품을
교체해 주었다.
그는 "신용만은 잃지 않겠다"는 각오를 가슴 속에 깊이 새겼다.
그리고 회사를 떠났다.
이때가 지난 89년.
실업자가 된 오 사장은 새로운 도전을 시도한다.
그 당시만해도 국내에서 생소하던 인터넷 전문가가 되겠다고 결심했다.
1년 이상 이 미개척분야에 매달렸다.
당시 오 사장은 생활비가 없어 어린 딸과 함께 지하 단칸방에서 지내는
어려운 살림을 했다.
다시 일자리를 찾은 곳은 삼도데이터시스템이란 작은 소프트웨어 회사.
이곳에서 오 사장은 지금 인터넷경매 기술의 토양이 된 가락시장 농수산물
유통경매시스템을 개발하게 된다.
개발시한과 품질을 맞추기 위해 하루에 3시간씩 자면서 매달린 것.
그는 무엇보다 자신의 이름을 걸고 "신용"을 지키고 싶었다.
그렇게 인터넷경매의 싹은 자라나기 시작했다.
96년 오 사장은 "일사랑정보"라는 소프트웨어 개발, 벤처기업을 직접
만든다.
어려운 환경에서도 연 매출액이 10억원에 이를 정도로 사업을 키웠다.
하지만 그를 더 절실히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바로 가락시장의 상인들이었다.
오 사장이 개발한 경매시스템의 성능은 뛰어났다.
시간이 지날수록 진가를 드러냈다.
그의 신용도 같이 빛을 발했다.
그 시스템의 정비와 기능향상을 위해선 오 사장이 필요했다.
결국 그는 새롭게 버전업된 경매시스템도 개발해 낸다.
가락시장과 맺은 이런 인연으로 지난 98년4월 인터넷 경매사이트
(www.auction.co.kr)를 개설하게 된다.
"인터넷경매"로 회사이름도 바꿨다.
이 회사는 현재 국내 인터넷 경매시장을 거의 독점하다시피 하고 있다.
이처럼 인터넷경매 오 사장의 명성은 하루 아침에 이뤄진게 아니었다.
벤처기업 대기업 할 것없이 많은 도전자들이 인터넷 경매사업을 시도했다가
중도 포기했다.
기술과 노하우가 부족했기 때문이다.
이제 외국기업을 포함, 합작만이라도 하고 싶어하는 업체들이 줄을 섰다.
10년 넘게 사용한 가락시장 경매시스템에서 축적한 노하우는 그리 만만한
것이 아니었던 셈이다.
오 사장은 "세계 최대의 인터넷 경매 회사인 이베이(eBay)가 들어와도
한국시장에 맞는 독자적인 기술을 개발해 온 우리를 당해내지 못할 것"이라고
자신감을 보였다.
오히려 인터넷경매의 영문사이트를 최근 개설하는 등 해외 인터넷
경매서비스도 적극 추진할 계획이다.
한번 쌓은 가락시장의 "신용"을 바탕으로 인터넷 전자상거래 시장의
독보적인 한 축을 차지한 오 사장.
오늘도 그의 사무실 한켠엔 여느때와 같이 큰 가방 하나가 눈에 띈다.
속옷과 양말이 가득 든 가방이다.
"신용"을 위한 그의 새로운 개발 "노력"은 24시간 제공되는 인터넷경매
서비스처럼 오늘밤에도 계속될 것이다.
(02)528-5353
< 서욱진 기자 venture@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9월 21일자 ).
하지만 이를 실천하기란 쉽지 않은 법.
인터넷경매의 오혁(38) 사장은 가장 단순한 이 원칙을 묵묵히 실천,
사이버 경매 시장의 최강자로 우뚝 섰다.
오 사장은 동국대 일어일문학과 출신.
졸업 후 자동차 시트커버 세일즈맨으로 직장생활을 시작했다.
하루도 쉬지 않고 전국 대리점을 개척했다.
매출은 급성장했다.
주문이 몰려 물건이 모자랄 정도였다.
그런데 문제가 발생했다.
회사가 덤핑물건에 상표만 붙여 팔기 시작한 것.
제품질의 차이가 나 편법은 곧 탄로가 났다.
속은 것을 안 대리점들의 항의가 쏟아졌다.
오 사장은 자신을 믿었던 대리점 주인들에게 일일이 사과하며 불량품을
교체해 주었다.
그는 "신용만은 잃지 않겠다"는 각오를 가슴 속에 깊이 새겼다.
그리고 회사를 떠났다.
이때가 지난 89년.
실업자가 된 오 사장은 새로운 도전을 시도한다.
그 당시만해도 국내에서 생소하던 인터넷 전문가가 되겠다고 결심했다.
1년 이상 이 미개척분야에 매달렸다.
당시 오 사장은 생활비가 없어 어린 딸과 함께 지하 단칸방에서 지내는
어려운 살림을 했다.
다시 일자리를 찾은 곳은 삼도데이터시스템이란 작은 소프트웨어 회사.
이곳에서 오 사장은 지금 인터넷경매 기술의 토양이 된 가락시장 농수산물
유통경매시스템을 개발하게 된다.
개발시한과 품질을 맞추기 위해 하루에 3시간씩 자면서 매달린 것.
그는 무엇보다 자신의 이름을 걸고 "신용"을 지키고 싶었다.
그렇게 인터넷경매의 싹은 자라나기 시작했다.
96년 오 사장은 "일사랑정보"라는 소프트웨어 개발, 벤처기업을 직접
만든다.
어려운 환경에서도 연 매출액이 10억원에 이를 정도로 사업을 키웠다.
하지만 그를 더 절실히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바로 가락시장의 상인들이었다.
오 사장이 개발한 경매시스템의 성능은 뛰어났다.
시간이 지날수록 진가를 드러냈다.
그의 신용도 같이 빛을 발했다.
그 시스템의 정비와 기능향상을 위해선 오 사장이 필요했다.
결국 그는 새롭게 버전업된 경매시스템도 개발해 낸다.
가락시장과 맺은 이런 인연으로 지난 98년4월 인터넷 경매사이트
(www.auction.co.kr)를 개설하게 된다.
"인터넷경매"로 회사이름도 바꿨다.
이 회사는 현재 국내 인터넷 경매시장을 거의 독점하다시피 하고 있다.
이처럼 인터넷경매 오 사장의 명성은 하루 아침에 이뤄진게 아니었다.
벤처기업 대기업 할 것없이 많은 도전자들이 인터넷 경매사업을 시도했다가
중도 포기했다.
기술과 노하우가 부족했기 때문이다.
이제 외국기업을 포함, 합작만이라도 하고 싶어하는 업체들이 줄을 섰다.
10년 넘게 사용한 가락시장 경매시스템에서 축적한 노하우는 그리 만만한
것이 아니었던 셈이다.
오 사장은 "세계 최대의 인터넷 경매 회사인 이베이(eBay)가 들어와도
한국시장에 맞는 독자적인 기술을 개발해 온 우리를 당해내지 못할 것"이라고
자신감을 보였다.
오히려 인터넷경매의 영문사이트를 최근 개설하는 등 해외 인터넷
경매서비스도 적극 추진할 계획이다.
한번 쌓은 가락시장의 "신용"을 바탕으로 인터넷 전자상거래 시장의
독보적인 한 축을 차지한 오 사장.
오늘도 그의 사무실 한켠엔 여느때와 같이 큰 가방 하나가 눈에 띈다.
속옷과 양말이 가득 든 가방이다.
"신용"을 위한 그의 새로운 개발 "노력"은 24시간 제공되는 인터넷경매
서비스처럼 오늘밤에도 계속될 것이다.
(02)528-5353
< 서욱진 기자 venture@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9월 21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