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디거 돈부시 < 미국 MIT 교수 >


일본의 경제평론가 오마에 겐이치가 최근 일본 우익 격주간지 "사피오"에
기고한 "한국이 경제적으로 일어설 수 없는 이유"란 제목의 경제평론은
상당한 센세이션을 불러일으켰다.

오마에는 이 글에서 김대중 대통령이 국제통화기금(IMF)과 미국계 투자은행
의 말을 좇아 경제성장을 지탱해온 재벌을 해체해 나라를 결딴내고 있다고
주장했다.

또 한국은 주요 부품을 생산할 수 없는 현재의 산업구조로는 선진국이 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오마에의 이같은 거침없는 비판은 한국인들에게 충격을 안겨주었고 이에
공감하는 견해도 없지 않다.

그러나 오마에가 사피오에 두차례에 걸쳐 게재한 한국경제에 대한 훈수는
경제원리에서 벗어나 일본입장에서만 접근한 평론에 불과하다.

한국은 오마에의 무지를 용서하고 현재 추진하고 있는 정책방향을 그대로
유지해 나가는 게 현명하다.

오마에의 한국경제 비난은 몇가지 점에서 한계가 분명하다.

그의 의견들은 우선 경제원론이 가르쳐 주는 이론과 크게 어긋난다.

그의 평론에는 또 한.일 양국간의 오래된 편견과 콤플렉스가 지나치게
강하게 드러나 있다.

심지어 국제사회에서 이미 불완전한 것으로 결론이 내려진 일본모델을
여전히 좋은 것으로 보고 있는 것은 그의 경제관이 온전치 못함을 보여준다.

한국이 주요 부품을 생산하지 못함으로써 결코 선진국이 될 수 없다는
오마에의 주장은 경제학의 기본개념에 정면으로 배치된다.

한 국가가 제조업 부문에서 원재료에서부터 완제품에 이르기까지 수직적
통합을 이뤄야 한다는 사고는 잘못된 것이다.

오마에의 이같은 사고방식은 그 나라에서 가장 잘 만드는 것을 생산해
외국에 내다파는 이른바 비교우위론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것이다.

지난 1백년동안 경제학계에서 비교우위론의 한계를 지적하고 새로운 견해를
제시하는 움직임이 끊임없이 이뤄져온 것은 사실이나 그러한 노력이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따라서 오마에는 일반화되지 못한 소수의견으로 한국경제를 난도질한 것이다

게다가 일본처럼 빈사상태에 이른 경제체제를 방어하려고 매달릴 경우 그
나라는 기력을 잃고 금융난을 겪게 되며 결국에는 침몰하고 만다.

반면 개방의 길을 택하고 시장경쟁 원리로 자원을 분배하는 나라들은 큰
발전을 이뤄왔다.

때문에 자유무역의 이점을 과소평가한 오마에의 견해는 옳다고 보기 어렵다.

한국경제가 지난 97년 외환위기를 겪게 된 이유는 관료와 대기업의 유착에서
찾을 수 있다.

그러나 오마에의 통렬한 비난에는 한국을 일본에 팔아넘기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

이는 "아시아 문제는 아시아가 고유의 치료법으로 해결한다"는 대동아공영권
식 견해를 반영하고 있는 것에 불과하다.

한국이 미국으로부터 너무 많은 돈을 빌린 것이 경제위기의 간접적 원인이
되었고 미국 은행들이 IMF의 구제금융으로 대출금을 변제받았다는 오마에의
주장도 잘못이다.

실제 한국의 주요 채권은행은 미국이 아닌 일본은행들이었다.

한국정부에 은행간 채무를 보증하도록 강요하는 조항을 IMF합의안에
포함시킨 것도 채권규모가 큰 일본은행의 도산을 막기 위해서였다.

일본정부가 IMF와 한국정부에 요구한 일이다.

오마에가 이런 사실을 모를 정도로 무지했다면 그의 말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전혀 없다.

물론 오마에의 지적처럼 미국 투자은행들이 한국의 경제위기 극복과정을
지원하면서 많은 돈을 벌었을 수는 있다.

그러나 미국 은행은 환자치료와 영리를 동시에 추구하는 외과의사와도 같은
것이다.

미국 은행들이 무작정 돈을 벌기 위한 목적으로 한국의 경제위기를 이용했
다고 매도할 수는 없다.

더군다나 일본조차 미 투자은행의 전문기술을 이용하고 있는 실정이다.

따라서 한국 정부가 시내에서 가장 좋은 병원을 찾은 것에 오히려 찬사를
보내야 할 것이다.

한국 정부가 97년 12월 외환위기 당시 선택할 수 있었던 방안은 외채상환
불능상태에 빠져 통화와 국내금융의 전면붕괴를 허용하거나 아니면 IMF의
입증된 처방전략에 협력하는 것이었다.

IMF처방이 효과를 봄으로써 통화가치가 회복되고 금리가 떨어졌다.

지금 경제성장률도 사실상 경제위기 이전 수준으로 회복될 정도로 높아졌다.

사실 미국 입장에서 본다면 금융이나 경제적으로 취약한 한국은 아시아를
더욱 허약하게 만들어 안보적 위험대상으로 부각될 수 있다.

물론 미국은 한국의 "미국화"전략으로 이득을 보고 있다.

그러나 미국이 위기에 빠진 한 나라를 일어설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은
훌륭한 세계전략이다.

< 정리=박영태 기자 py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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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세계적 석학인 루디거 돈부시 미국 MIT 교수가 20일 연합뉴스에
보낸 "십자포화 속의 한국개혁"이란 제목의 기고문이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9월 21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