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물건의 이름과 사람의 이름 ]

어떤 상표가 특허 등록되고 나면 당사자의 허락이 없는 한 다른 사람이
그것을 사용할 수 없다.

물건이나 서비스의 이름에 배타적 권리를 부여하여는 까닭은 무엇일까.

한번 봐서 어떤 상품이나 서비스의 질이 좋은지 나쁜지를 판별하기란 쉽지
않다.

품질이 불확실하면 소비자들은 해당 제품에 대한 수요를 줄이게 되고, 이런
상황이 계속된다면 그 제품은 시장에서 없어질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 그런 상황은 잘 일어나지 않는다.

공급자들이 소위 평판이라는 것에 투자하기 때문이다.

평판이란 "어떤 회사의 제품은 믿을 만 하더라"는 식의 믿음이나 소문,
인식 등을 말한다.

품질을 판별하기가 쉽지 않더라도 소비자들은 평판을 믿고 제품을 고를 수
있다.

평판은 그저 만들어지는게 아니다.

평판을 만들기 위해서는 오랜 기간 일정한 품질의 제품들을 공급해야 하며,
또 그렇다는 사실을 알리기 위해 광고도 해야 한다.

공급자에 있어 평판은 많은 투자를 필요로 하는 귀중한 자산인 것이다.

상표권이 필요한 것은 평판이 도둑맞기 쉽기 때문이다.

어떤 제품이 좋은 평판을 쌓았다고 해 보자.

소비자들은 그 평판을 믿고 살 것이다.

그런데 다른 업자가 품질은 형편없지만 외관상으로는 그 제품과 구별하기
어려운 제품을 만들어 판다고 생각해 보자.

남의 평판을 도둑질하는 셈이다.

그러면 외관만을 보고 물건을 산 사람들은 속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이고, 그런 일이 계속된다면 결국 그렇게 생긴 물건을 사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좋은 평판을 유지하기 위해 투자를 한 공급자는 손해를 보게 될 것이고,
앞으로는 그런 투자를 하지 않을 것이다.

결국 품질의 판별이 어려운 물건은 세상에서 사라져 버릴 것이다.

이것은 모두에게 불행한 사태이다.

배타적 상표권은 이런 상황을 막아준다.

상표는 쉽게 구별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반면 사람은 굳이 이름이 아니더라도 생김새나 목소리, 생활습관 등 여러
가지로 구별이 가능하기 때문에 굳이 이름에 배타적 권리를 인정할 필요가
없다.

< 김정호 경제학 박사. 자유기업센터 법경제실장 www.cfe.org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9월 20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