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사람 네트워크 업계의 가장 뛰어난 인물이지. 미국뿐 아니라 전 세계를
둘러봐도 그 사람 만한 경영자는 찾을 수없을 것이야"(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

대통령까지 나서서 칭찬을 아끼지 않는 인물이 있다.

존 챔버스(49).

시스코란 미국 인터넷 네트워크 업체의 사장이다.

빌 게이츠(마이크로소프트 회장)나 스티브 잡스(애플컴퓨터 사장) 같은
스타 이미지는 없지만 챔버스는 미국 정보통신업계의 한 중앙에 서 있다.

그의 한마디 한마디가 업계의 동향을 읽는 키워드다.

90년 겨울.

챔버스는 실업자였다.

그러나 어깨에는 힘이 들어갔다.

패기가 넘쳐 흘렀다.

그는 스스로 직장을 때려치운 자발적 실업자였다.

퇴직하면 얼마 지나지 않아 자신을 찾는 사람들로 전화통에 불이 날 것으로
여겼다.

하지만 1주일 2주일이 지나도 전화통은 잠잠했다.

챔버스는 불안해졌다.

그는 수백장의 이력서를 작성했고 실리콘밸리를 돌아다니며 이를 뿌렸다.

몇차례는 인터뷰도 했다.

챔버스는 나중에 "한달여만에 나는 반항을 모르는 순한 양이 된 자신을
발견하게 됐다"고 회고했다.

그를 실직상태에서 구해준 것은 네트워크 업계의 친구와 전 직장의 동료들
이었다.

챔버스의 능력을 아는 친구 동료들이 시스코를 소개해준 것이다.

시스코는 당시 연간 매출액 7천만달러의 일개 중소업체였으며 세상은 아직
인터넷에 열광하지 않았다.

그의 직책은 전략개발담당 부사장.

IBM에서 경력을 쌓고 당시 제법 이름을 날렸던 왕(Wang)연구소에서 2년간
부사장까지 역임했던 챔버스의 새 출발은 그렇게 시작됐다.

"보석에는 날카롭거나 은은한 광채가 있지요. 네트워크는 바로 인터넷이란
보석을 빛내 주는 광채와 같은 것이라고 봅니다"

챔버스는 인터넷시대의 핵심이 네트워크란 사실을 일찌감치 깨달았고
회사의 역량을 그곳에 집중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현재 시스코는 인터넷 네트워킹에 필요한 장비시장에서 80% 이상의 시장
점유율을 유지하고 있다.

챔버스는 국제영업담당 부사장을 거쳐 95년 사장에 올라 시스코를 전면에서
이끌어 왔다.

시스코는 매출액 1백21억달러, 순익 25억5천만달러 규모로 성장했다.

챔버스가 합류한지 8년만에 약 1백배나 늘어났다.

그는 97년 미국의 유력 잡지인 포천이나 비즈니스위크 등에 의해 "올해의
경영자"로 뽑히는 영광으로 그동안의 설움과 노력을 보상받았다.

또 지난 5월말 현재 6억6천만달러의 재산을 가진 인터넷 갑부가 됐다.

챔버스는 모두 의사인 부모들의 영향을 받아 자신도 의사가 되길 꿈꾸며
유년기를 보냈다.

유년기에 대해 알려진 특별한 얘기는 없다.

다만 편집광적인 그의 기질은 어려서부터 충분히 엿보였다고 부모들은
기억을 더듬는다.

그저 문득 "차라리 내 사업을 하는게 낫겠다"는 생각이 든게 목표를 바꾼
이유였다.

84년 스탠퍼드대학의 부부교수에 의해 시스코가 설립됐을 때 챔버스는
인디애나대학에서 경영학석사를 마친후 IBM의 기술영업사원으로 사회경력을
쌓고 있었다.

IBM의 영업담당 중역을 거쳐 왕연구소에서 부사장을 맡고 있던 그는
껄끄러운 인력감축이란 임무가 주어지자 자리를 박차고 나올 수밖에 없었다.

시스코 사람들은 정말 대단한 열정을 보였다.

이들의 집착력에는 앤디 그로브 인텔 회장도 얼굴이 창백해지며 "질렸다"고
말했다는 이야기가 나돌 정도다.

그중에서도 챔버스는 합류한 날로부터 시스코를 오늘날의 우량기업으로
키운 가장 핵심 인물로 평가받는다.

특히 M&A(매수합병)와 비용절감에는 신기에 가까운 재주를 보였다.

그는 모든 것이 빨랐다.

실리콘 밸리의 스타일에서 일탈한 정장차림(이는 IBM에서 얻은 것이라고
챔버스는 얘기한다)을 지켰지만 하루의 40%를 길위에서 보냈다.

하루에 반드시 최소 2명에서 10여명의 고객을 만났다.

그의 하루 마지막 일과는 간소한 피자집에서 각 사업부문의 회계서류를
검토하는 것이었다.

챔버스는 남부 억양의 투박한 말투를 가졌으나 동시에 설득력이 있었다.

MBA 출신답게 기술력있는 30여개의 유망 벤처기업을 발굴, "시스코 우산"
속으로 끌어들였다.

"참으로 인상깊은 것은 결코 쉬지 않는 편집광적인 일 욕심입니다. 그는
시스코가 잠시라도 자만에 빠질 경우 또 다른 "IBM"이 될 것이라고
여겼습니다"

그에 대한 친구들의 평가는 한결같다.

M&A에 열중하긴 했지만 챔버스의 머리속을 채우고 있는 것이 시장지배력은
아니었다.

그는 줄곧 시장지배 이상의 것을 꿈꿔 왔다.

그것은 세상이 작동하는 방식을 바꾸는 것이었다.

챔버스는 인터넷 네트워킹을 통해 혁명을 원하고 있었다.

"우리 시대에 진행되고 있는 기술혁명은 2백년전 산업혁명이 인류역사에
던져 줬던 충격에 비견할 수 있습니다. 시스코는 이 변화를 최선두에서
이끌어 갈 수있는 기회를 가졌습니다. 지금까지 해왔던 것처럼 우리의 일에
충실하기만 하면 혁명은 반드시 완수됩니다"

챔버스는 오늘도 재규어 컨버터블(97년형)에 몸을 싣고 고객을 찾는다.

< 박재림 기자 tree@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9월 16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