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24일.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은 비장한 얼굴로 TV에 나타나 유고사태 개입을
선언했다.

"우리는 유고군에 유린된 코소보 알바니아인들의 너무나 처참한 모습을
보아왔다. 미국은 이런 비극을 하루빨리 끝내지 않으면 안되는 도덕적
의무감을 갖고 있다"

이른바 "뉴인터내셔널리즘(신국제주의)"이다.

신국제주의란 한 국가에 심각한 인권침해가 있을 때는 주권침해라는 비난이
있더라도 국제사회가 나서서 경제.군사적 제재를 통해 이를 해결해야 한다는
논리다.

이후 미국이 유고전에 승리하면서 신국제주의는 새로운 국제질서 이념으로
자리잡아 가는듯 했다.

그리고 신국제주의에 입각, 미국이 인권유린국으로 꼽히는 북한을 노리고
있다는 설이 돌면서 한반도가 긴장하기도 했다.

그런 미국이 이상하게도 동티모르문제에 대해서는 미지근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동티모르에서는 많은 주민들이 인도네시아군및 민병대에 살상당하고 있다.

그러나 미국은 동티모르 사태에 인도네시아군이 개입돼 있다고 비난하거나
경제제재를 고려하고 있다고 밝히고는 있지만 아직 적극적인 개입의지는
보이지 않고 있다.

중국 대사관을 폭격하고 나서도 공습을 계속하던 배짱을 찾아 볼길이 없다.

대답은 결국 "미군이 나토군을 주도하는것은 국익에 부합되기 때문"이라던
클린턴의 출사표에서 찾을 수밖에 없다.

사실 미국은 유고전에서 많은 것을 챙겼다.

우선 러시아의 재확장정책에 쐐기를 박았다.

또 발칸을 장악함으로써 풍부한 지하자원을 가진 중앙아시아 지역도
시장권으로 끌어들었다.

그러나 동티모르에선 미국이 득볼게 없다.

인구 80만명의 "소국" 동티모르 때문에 자원부국이자 비동맹권의 주도국이며
세계 최대 이슬람국가인 인도네시아의 심기를 건드릴 이유가 없다.

신국제주의는 처음부터 말자체가 성립하지 않는지도 모른다.

인권보호를 외치면서도 미국은 티벳이나 카슈미르는 외면한다.

또 1백50만명이 처참하게 죽어간 르완다 내전에 대해서도 침묵으로 일관했다

인권유린이나 도덕적 의무감은 명분에 지나지 않는다는 얘기다.

개입 여부는 결국 미국의 이해관계에 따라 결정된다.

요즘 동티모르인들은 죽음의 공포에 몰려 야산으로 도망다니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이들이 국제사회의 도움을 받을수 있을지는 불투명하기만 하다.

동티모르인중에는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제2의 르윈스키라도 나타나면 좋을텐데..."

< 박수진 국제부 기자 parksj@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9월 13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