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다각화가 위기 주범 아니다 .. 이제민 <연세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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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민 < 연세대 교수 / 경제학 >
흔히 한국경제의 현 위기를 "연환계와 동남풍"으로 설명한다.
한국의 대기업들이 문어발식으로 늘린 계열사들을 상호지급보증으로 묶어
놓고 있는 상태에서 동남아 금융위기라는 충격을 받아 쓰러지는 바람에
위기가 일어났다는 것이다.
적벽대전에서 조조의 군사가 배를 묶어(연환)놓고 있다가 제갈량의 동남풍에
당한 꼴이라고 한다.
그러나 97,98년에 도산하여 위기를 일으켰거나 심화시킨 대기업그룹의
면모를 실제로 들여다 보면 업종수를 늘린 다각화가 도산의 주범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말썽 많았던 한보와 기아는 철강과 자동차에 전문화하고 있는 그룹이었다.
동아나 극동은 경기에 민감한 건설업종을 주력으로 하고 있었고, 뉴코아는
백화점 등 유통업에, 아남은 전자, 한일은 섬유에 특화하고 있었다.
최근 몸살을 앓고 있는 대우의 경우도 규모가 크다는 것을 제외하고는 전체
구도에는 별 변동이 없다.
재벌은 개도국의 독특한 기업조직이다.
개도국은 시장이 불완전하거나 아예 없어서 거래를 내부화할 수밖에 없다.
대부분의 개도국에서 재벌조직이 발견되는 것은 이 때문이다.
한국의 경우에는 국제적으로 기술집약적 산업을 지배하고 있는 거대 다국적
기업에 맞서기 위해 정책적으로 만든 기구라는 성격도 있다.
지금도 국제적으로 보면 중소기업에 불과한 개별기업으로는 맞설 수 없으니
"중소기업연합"으로라도 버텨 보겠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
이러한 체제가 위험분산에도 유리하여 불황에 견디는 힘을 길렀다고 할 수
있다.
이번 위기에서도 전업종이 타격을 받았지만 그래도 업종에 따라 차이가
있었다.
같은 재벌 산하기업들이 연환구도 때문에 함께 쓰러진 경우도 있었지만
연환구도 때문에 위기를 넘길 수 있는 경우가 더 많았다.
앞으로 한국이 선진국이 되고 글로벌 경쟁이 격화됨에 따라 조건은
달라지겠지만, 적어도 아직 한국은 여전히 개도국이고, 재벌체제의
유용성이 끝났다고 단언하기는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벌의 "문어발식 확장"이 현 위기의 주범으로 몰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다각화라는 구조가 재벌의 각종 부정적 행태의 근거가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총수 전횡, 변칙 상속, 부당 내부거래, 중소기업 죽이기 등 재벌의 부정적
행태가 다각화된 구조 위에서 이뤄진다고 알려졌다.
한국 대기업은 이런 행태를 더 이상 보여서는 안 된다.
살벌한 자본의 세계에서 윤리 얘기를 하자는 것이 아니라, 이런 행위의
결과는 대기업 자신에 돌아간다.
다각화의 이익 자체를 부인하고 구조를 혁파하자는 목소리를 키워 다각화의
이익을 주장하는 목소리를 묻어버릴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선단식 경영 종식"이 재벌개혁의 핵심인 것처럼 인식되고
있다.
산업과 금융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세계적으로 산업과 금융의 구분이 불분명해지는 상태에서 산업자본의
제2금융권 소유를 제한하는 것이 부당하다는 재계의 주장은 일리가 있다.
산업자본이 필요에 따라 제2금융권에 진출할 "기업의 자유"는 존중돼야
한다.
그러나 다른 모든 자유와 마찬가지로 기업의 자유도 책임을 다할 때 누릴
수 있는 것이다.
책임을 다한다면 정부가 재벌의 불법.불공정행위를 처벌하겠다고 나오는 데
대해 당당하게 맞설 수 있을 것이다.
재벌의 불법행위 가능성을 들어 제2금융권 소유를 제한해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 그럴 필요 없이 불법이나 불공정행위는 그 자체로서 처벌하면 된다는
것이 재계의 논리 아닌가.
마찬가지로 정부는 최소한도의 일관성을 보여주기 위해서도 재벌의 불법.
불공정행위를 철저히 단속해야 한다.
김대중 대통령의 8.15 선언에서 제2금융권 소유구조를 혁파하겠다고 했다가
열흘 뒤 정.재계간담회에서 사실상 철회한 이유는 소유구조를 굳이 바꾸지
않아도 이런 행위를 단속하면 된다고 믿었기 때문은 아닌가.
선거를 앞두고 하는 일과성 정치행사가 아니라 앞으로는 이런 행위가 용납
되지 않는다는 것을 주지시켜야 할 것이다.
한국 같은 개도국에서는 모든 문제를 분석적이 아니라 뭉뚱그려 보는 경향이
있다.
재벌문제는 그 전형이다.
재벌체제는 부정적 행태를 제거하면 아직도 유용성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그렇게 되는 데는 재벌이나 정부나 비상한 노력이 있어야 할 것이다.
금융시장을 모두 개방해 놓은 마당에 앞으로 동남풍뿐 아니라 그보다 무서운
허리케인이 불 수도 있다.
-----------------------------------------------------------------------
<> 필자 약력
=<>서울대 경제학과
<>미국 하버드대 경제학박사
<>논문:산업조직론의 관점에서 본 한국 국제무역패턴의 결정요인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9월 9일자 ).
흔히 한국경제의 현 위기를 "연환계와 동남풍"으로 설명한다.
한국의 대기업들이 문어발식으로 늘린 계열사들을 상호지급보증으로 묶어
놓고 있는 상태에서 동남아 금융위기라는 충격을 받아 쓰러지는 바람에
위기가 일어났다는 것이다.
적벽대전에서 조조의 군사가 배를 묶어(연환)놓고 있다가 제갈량의 동남풍에
당한 꼴이라고 한다.
그러나 97,98년에 도산하여 위기를 일으켰거나 심화시킨 대기업그룹의
면모를 실제로 들여다 보면 업종수를 늘린 다각화가 도산의 주범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말썽 많았던 한보와 기아는 철강과 자동차에 전문화하고 있는 그룹이었다.
동아나 극동은 경기에 민감한 건설업종을 주력으로 하고 있었고, 뉴코아는
백화점 등 유통업에, 아남은 전자, 한일은 섬유에 특화하고 있었다.
최근 몸살을 앓고 있는 대우의 경우도 규모가 크다는 것을 제외하고는 전체
구도에는 별 변동이 없다.
재벌은 개도국의 독특한 기업조직이다.
개도국은 시장이 불완전하거나 아예 없어서 거래를 내부화할 수밖에 없다.
대부분의 개도국에서 재벌조직이 발견되는 것은 이 때문이다.
한국의 경우에는 국제적으로 기술집약적 산업을 지배하고 있는 거대 다국적
기업에 맞서기 위해 정책적으로 만든 기구라는 성격도 있다.
지금도 국제적으로 보면 중소기업에 불과한 개별기업으로는 맞설 수 없으니
"중소기업연합"으로라도 버텨 보겠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
이러한 체제가 위험분산에도 유리하여 불황에 견디는 힘을 길렀다고 할 수
있다.
이번 위기에서도 전업종이 타격을 받았지만 그래도 업종에 따라 차이가
있었다.
같은 재벌 산하기업들이 연환구도 때문에 함께 쓰러진 경우도 있었지만
연환구도 때문에 위기를 넘길 수 있는 경우가 더 많았다.
앞으로 한국이 선진국이 되고 글로벌 경쟁이 격화됨에 따라 조건은
달라지겠지만, 적어도 아직 한국은 여전히 개도국이고, 재벌체제의
유용성이 끝났다고 단언하기는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벌의 "문어발식 확장"이 현 위기의 주범으로 몰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다각화라는 구조가 재벌의 각종 부정적 행태의 근거가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총수 전횡, 변칙 상속, 부당 내부거래, 중소기업 죽이기 등 재벌의 부정적
행태가 다각화된 구조 위에서 이뤄진다고 알려졌다.
한국 대기업은 이런 행태를 더 이상 보여서는 안 된다.
살벌한 자본의 세계에서 윤리 얘기를 하자는 것이 아니라, 이런 행위의
결과는 대기업 자신에 돌아간다.
다각화의 이익 자체를 부인하고 구조를 혁파하자는 목소리를 키워 다각화의
이익을 주장하는 목소리를 묻어버릴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선단식 경영 종식"이 재벌개혁의 핵심인 것처럼 인식되고
있다.
산업과 금융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세계적으로 산업과 금융의 구분이 불분명해지는 상태에서 산업자본의
제2금융권 소유를 제한하는 것이 부당하다는 재계의 주장은 일리가 있다.
산업자본이 필요에 따라 제2금융권에 진출할 "기업의 자유"는 존중돼야
한다.
그러나 다른 모든 자유와 마찬가지로 기업의 자유도 책임을 다할 때 누릴
수 있는 것이다.
책임을 다한다면 정부가 재벌의 불법.불공정행위를 처벌하겠다고 나오는 데
대해 당당하게 맞설 수 있을 것이다.
재벌의 불법행위 가능성을 들어 제2금융권 소유를 제한해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 그럴 필요 없이 불법이나 불공정행위는 그 자체로서 처벌하면 된다는
것이 재계의 논리 아닌가.
마찬가지로 정부는 최소한도의 일관성을 보여주기 위해서도 재벌의 불법.
불공정행위를 철저히 단속해야 한다.
김대중 대통령의 8.15 선언에서 제2금융권 소유구조를 혁파하겠다고 했다가
열흘 뒤 정.재계간담회에서 사실상 철회한 이유는 소유구조를 굳이 바꾸지
않아도 이런 행위를 단속하면 된다고 믿었기 때문은 아닌가.
선거를 앞두고 하는 일과성 정치행사가 아니라 앞으로는 이런 행위가 용납
되지 않는다는 것을 주지시켜야 할 것이다.
한국 같은 개도국에서는 모든 문제를 분석적이 아니라 뭉뚱그려 보는 경향이
있다.
재벌문제는 그 전형이다.
재벌체제는 부정적 행태를 제거하면 아직도 유용성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그렇게 되는 데는 재벌이나 정부나 비상한 노력이 있어야 할 것이다.
금융시장을 모두 개방해 놓은 마당에 앞으로 동남풍뿐 아니라 그보다 무서운
허리케인이 불 수도 있다.
-----------------------------------------------------------------------
<> 필자 약력
=<>서울대 경제학과
<>미국 하버드대 경제학박사
<>논문:산업조직론의 관점에서 본 한국 국제무역패턴의 결정요인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9월 9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