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상민 < 본사 논설실장 >

우리나라 사람들의 재벌에 대한 인식은 강봉균 재경부장관이 국민회의
국회의원 연수강좌에서 지적한 것처럼 지극히 이중적이다.

비판적인 성향이 강한 것처럼 보이지만, 물건을 사도 재벌회사 것을 선호
하고 취직도 재벌회사를 선택하는 것이 보편적이다.

투신업계의 후발주자격인 현대.삼성계열사 대약진도 그런 결과로 볼 수
있다.

바로 그래서 "재벌계열 제2금융권 회사에 대해서는 재벌이름을 붙이지
못하도록 하자"는 웃기는 정책구상이 나오기도 했지만, 그것은 재벌상호가
적어도 증시주변인구들에게는 실질적인 정부회사보다 더 공신력있게 받아
들여졌다는 반증이라는 점에서 특히 주목할 만하다.

강 장관이 일반국민들의 재벌에 대한 인식이 어떠하다는 얘기를 새삼스럽게
왜 했는지는 매우 궁금한 대목이다.

거의 모든 경제부처에서 재벌개혁과 연관되는 정책을 잇달아 쏟아놓고 있고
최근 들어서는 검찰이 현대를 주가조작혐의로, 국세청이 삼성을 증여세포탈
혐의로 제재하려는 상황이기 때문에 특히 그렇다.

복잡하고 미묘한게 재벌문제인 만큼 그 속도와 방법을 조절할 필요가 있다는
점을 완곡하게나마 피력한 것 같기도 하고, 또 어떻게 보면 그렇지않은 것
같기도 해 아리송하다.

궁금증은 시간이 가면 해결될 일이지만, 나는 재경부장관이 재벌개혁과
관련해 최소한 두가지 점만은 하루빨리 분명히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그 하나는 정부당국이 ''문제삼을 수 있는 탈세''가 어떤 것인지를 명확히
하는 것이고, 또다른 하나는 상장기업 주가관리의 한계가 어디까지인지를
확실히 하는 것이다.

이 문제로 한국을 대표하는 두 재벌그룹에 대한 불확실성이 증대되고 있고,
그것은 자칫 한국기업에 대한 대외적인 신뢰추락이나 국내금융시장 불안을
결과할 수도 있고 보면 명확한 정리가 시급하다.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이 증여세를 내고 아들에게 60억원의 현금을 줘 이
돈으로 에스원 삼성엔지니어링 등 비상장주식을 취득하게 해 결과적으로
5백55억원의 상장차익을 얻게한 것은 탈세인가 아닌가.

참여연대등 시민운동단체가 이 문제로 삼성을 비난하는 것은 결코 잘못된
일이 아니다.

시민운동단체로서는 당연히 그런 문제를 지적할 수 있고 또 그렇게 해야
한다.

그러나 엄격한 조세법률주의를 기본으로 하는 우리 세법체계상 이것이
"정부에서 문제삼을 수 있는 탈세"에 해당하지않는 것 또한 분명하다.

바로 이런 상황에서 정부가 해야할 일은 무엇인가.

못받은 세금을 결손처분하고 동일한 사안이 재발될 경우에나 세금을 매길
수 있도록 세제를 보완하는 것 외에 달리 방법이 없다.

감정적으로는 참으로 내키지 않는 일이지만 법리상 그러하다.

증여세법상의 수많은 증여의제조항은 바로 그래서 생겨났다.

앞으로도 끊임없이 생길 새로운 금융기법을 이용한 탈세에 대응하기 위해서
는 과세요건에 대한 엄격한 법정주의원칙을 완화, 포괄적인 실질과세가 가능
하도록 하는 것도 방법일 수 있다.

헌법재판소와의 법리논쟁을 낳을 여지가 있지만 세제당국이 택할 수 있는
방법임에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제도적으로 못받게된 세금과 관련, 세정책임자가 특정기업에 대한
제재를 운위하고 그래서 그 기업에 대한 일반의 불안감을 증폭시키는 것은
정부로서 해서는 안될 일이다.

검찰에서 문제되고 있는 현대그룹 핵심간부들의 주가조종혐의도 재경부
입장에서 생각해볼 대목이 있다.

현행 증권거래법 189조는 상장법인에 대해 자기주식취득을 허용하고 있다.

이는 상장법인에 대해 주가관리를 가능하도록 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것이 증시안정과 소액주주보호를 위해 필요하다고 봤기 때문일 것이다.

현대의 경우 현대전자주식을 현대중공업등에서 매입한 만큼 법이 정한
자기주식매입은 아니다.

그러나 그룹경영체제 아래서 자금사정에 따라 계열사들이 주가관리책임을
나눠온 것은 오래된 관행이다.

현대중공업등이 매입했던 현대전자주식을 지금도 계속 보유하고 있다는
점만으로도 시세차익을 노린 주가조작이 아니었다는 것은 명확하다.

검찰의 이번 사건처리와는 별도로 경제정책부서로서 재경부는 관행이나
현실과 괴리된 제도의 문제점을 직시해야 한다.

검찰이 문제삼는 통정매매만 해도 그렇다.

주가변동에 따른 이익을 재무제표에 반영하기 위한 자전거래는 "권리의
이전을 목적으로 하지 않는 가장된 매매거래"라는 점에서 명백히 법위반이지
만, 금융기관결산이 임박한 시점에서 다반사로 이루어지는 관행이다.

또 통정매매 역시 경영권변동 없이 지분을 관리하기 위해서는 불가피한게
현실이다.

투자자들에게 전혀 피해를 주지않는 이런 형태의 거래가 제도적으로 불법
으로 규정되고 있는 것은 문제다.

그런 것들이 실제이상으로 기업상을 일그러뜨리는 요인이 되고 있는 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맘먹기에 따라서는 언제든지 흔들 수 있도록 해놓자는 의도가 아니라면
재경부는 재벌개혁을 운위하기에 앞서 해야할 일이 많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9월 8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