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지배구조를 바꾸자는 주장은 외환위기 이후에 본격적으로 대두됐다.

외환위기를 초래한 원인중의 하나가 잘못된 기업지배구조인 만큼 이를
개선하자는 것이다.

소수의 대주주가 기업의 의사결정을 독점하는 탓에 과잉 중복투자가
이루어지고 결국은 경제위기로 치닫게 됐다는 논리다.

이런 주장이 공감대를 만들어가면서 기업지배구조를 개선하자는 움직임이
본격화됐다.

정부는 지난 3월 민간자율기구인 기업지배구조개선위원회를 발족시켰다.

이 위원회는 금융기관대표 기업경영인 학계 법조계 등 각 분야를 망라한
전문가들로 구성됐다.

일부 재계 및 시민단체 대표들이 "색깔시비"로 중도에 사퇴하기도 했다.

기업지배구조 개선논의의 핵심은 말 그대로 기업의 지배권을 누가 갖는가
하는 문제로 귀착된다.

기업에는 주주, 경영자, 채권자, 종업원 등 다양한 이해관계자가 존재
한다.

기업에는 이들의 이해관계를 조정하고 효율적인 경영을 뒷받침하기 위한
여러가지 기구가 존재하며 이를 총칭하여 기업지배구조라 한다.

예컨대 국가로 치면 의회에 해당하는 주주총회와 이사회 그리고 행정부나
마찬가지인 경영진을 어떻게 구성하고 권력을 나누어 가지는가에 대한
기준을 만드는 문제이다.

개선위원회는 지난 8월 기업지배구조 개선 모범규준을 내놓았다.

모범규준의 취지는 한마디로 기업경영을 보다 투명하고 효율성있게 개선해
기업가치를 극대화하자는 것이라고 요약할수 있다.

우선 모범규준은 주주의 권한을 강화하기 위해 주주총회를 분산개최하고
주주제안기간도 단축하라고 권고한다.

또 서면이나 전자투표를 이용한 주주의결권 행사도 포함돼 있다.

이사회 활성화는 모범규준의 핵이다.

지배주주를 제대로 감시하자는 의미에서 이사회에 사외이사수를 과반수로
늘리고 이사도 사외이사중심의 추천위원회에서 추천하는 안을 내놓았다.

집중투표제의 도입이나 감사위원회의 권한강화도 결국은 대주주를 견제
하려는 것이다.

민간자율기구가 만든 이 모범규준이 단순한 "권장사항"에 그칠 것으로 보는
사람은 없다.

기관투자자들은 고객의 입장을 대변해 모범규준을 도입토록 시장에서
상당한 압력을 행사할 것으로 보인다.

또 집중투표제를 도입했는지 여부는 신용평가의 잣대로 이용돼 기업의
차입코스트 결정에 변수로 작용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렇게 기업지배구조를 고칠 경우 과연 기업의 경쟁력이 강화되고
투명경영이 이루어질 것인가에 대해서는 이론이 없지않다.

확실한 경영권이 보장되지 않는 상황에서 혁신과 생산성 향상이 가능할
것인지는 아직 미지수이다.

외국의 사례도 이를 확인해 주고 있다.

선진국들이 기업지배구조를 놓고 지금도 논란을 벌이는 것은 바로 이 때문
이다.

예컨대 미국에서는 철저한 주주자본주의가 이루어지고 있는 반면 독일 등
유럽에선 이해관계자 자본주의쪽으로 기울고 있다.

기업지배구조는 기업환경 변화에 따라 끊임없이 변화 발전할 수 밖에 없는
것으로 이해되고 있다.

주주-경영자-채권자-종업원 등 기업 이해관계자의 복잡한 역학관계를 적절히
반영하는 것이 그만큼 어렵기 때문이다.

< 김병일 기자 kbi@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9월 7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