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범규준안을 보면 재벌개혁 당위론 앞에 기업 경영효율 제고는 뒷전으로
밀려나고 있는 느낌이 든다.

지배주주의 경영전횡을 막기 위한 적정한 견제 감시기능은 도입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공기업도 아닌 민간기업에 사외이사 과반수 의무화, 사외이사에
의한 이사추천, 집중투표제, 감사위원회제도 등 옥상옥의 견제 감시기능을
도입하는 것은 지나치다.

더욱이 이러한 제도들은 하나 하나가 선진국에서도 검증이 끝나지 않은
논란의 소지가 많은 제도다.

우선 5대그룹 사외이사 25%가 의무화된지 불과 1년만에 이를 과반수로
확대하는 것은 성급하다.

전문성과 책임성을 갖춘 사외이사를 구하기 힘든 현실에서 이들이 이사회의
다수를 차지한다면 기업경영에 심각한 차질이 초래될 수 있다.

기업경영에 있어 이사회의 다수를 누가 차지하느냐는 매우 중요한 문제다.

사외이사 과반수 의무화는 단순히 숫자 확대 차원이 아닌 기업경영 본질
차원에서 신중히 접근할 필요가 있다.

또한 사외이사들에게 이사후보 추천권을 부여하는 것은 지나치다.

주주의 핵심권한인 이사후보 추천권을 침해하기 때문이다.

집중투표제를 반 강제적으로 유도하는 것도 문제다.

집중투표제를 채택할 경우 기업 경영권에 대한 매력이 감소하여 기업가치를
하락시키고 이사간 갈등이 커지는 부작용이 우려된다.

이러한 이유로 러시아, 칠레, 멕시코 등 극소수의 나라에서만 채택이 강제화
돼 있다.

선진국을 포함한 대부분의 나라에서 선택사항으로 완화되는 추세에 있으며
일본의 경우 상장기업 중 채택한 기업이 없을 정도다.

아울러 사외이사로 구성되는 감사위원회의 권한을 지나치게 강화하는 것도
문제다.

감사위원회는 업무집행의 적법성을 감사하는 것으로 한정할 필요가 있다.

업무집행의 타당성까지 감사토록 하는 것은 경영진이 신규투자 등 위험성이
있는 의사결정을 회피토록 하여 경영효율을 저해할 우려가 크다.

기업은 흔히 계약의 복합체로 불린다.

사적계약의 일부인 기업 지배구조의 이상적인 형태는 하루아침에 누가
고안해 낼 성질의 것이 아니다.

적자생존의 법칙이 지배하는 시장에서 끊임없이 진화발전해온 역사적
결과물이다.

또한 세계 어디서나 통용되는 이상적인 기업지배구조를 만드는 것은 어쩌면
불가능한 일인지도 모른다.

기업 경영환경은 나라마다 달라 이상적인 지배구조도 나라에 따라 다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기업지배구조도 경영환경 변화에 따라 진화의 과정을 밟아야
한다.

그러나 진화의 속도와 내용은 기업들이 처한 경영환경을 감안한 것이어야
한다.

현실을 무시한 체 지나치게 이상적인 제도를 고집한다면 제도자체를 더욱
불완전하게 만드는 오류를 범할 수 있다.

지배구조개선 모범규준은 실천 가능한 현실적인 것으로 다듬어져야 한다.

그 목표도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기 보다는 기업경영 효율제고를 통한
기업가치 극대화에 둬야 한다.

기업이 사회에 가장 크게 기여하는 길은 효율적인 경영을 통해 가능한한
많은 일자리와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최경환 < 논설위원겸 전문위원 khc@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9월 7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