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기택 < 중앙대 교수 / 경제학 >

재벌개혁의 강도를 높이는 정책이 가시화되고 있다.

지난주도 예외는 아니었다.

국세청은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 일가의 우회 주식증여에 관련하여 세무조사
에 착수했다.

한편 검찰에서는 현대전자 주가조작의혹 수사를 현대그룹 전체로 확대할
방침으로 알려졌다.

핵심 권력기관들이 전 방위적으로 재벌에 대해 압박을 가하고 있는 셈이다.

이러한 일련의 사태로 인해 도덕성에 훼손을 입은 재계는 강력하게
반발하고 있다.

지난주 한국경제신문은 이번 조치가 경제에 미치는 영향과 재계의 반박내용
을 심도 깊게 다루었다.

2일자 신문은 증권 면에서는 이익치 현대증권 회장 출국금지 조치로 인한
불안한 증권가 표정을, 사회면에서는 현대전자 주식매입의 합법성에 관한
현대 측의 주장을 상세히 보도하였다.

3일자 사회면에서도 "지분변동신고...조작적용 무리"라는 제목 아래
쟁점사항의 깊이 있는 분석을 통해 검찰 수사의 부당성을 지적하였다.

4일자에서는 1면 머릿기사로 정부의 재벌 전 방위 압박이 경제 전반에
미치는 악영향에 관해 보도하였다.

한경의 이같은 심층적 보도태도는 주로 사건내용만을 단순하게 보도하는
일반신문과는 차별화된다.

종합경제지답다고 하겠다.

그러나 이번 주가조작사건의 더욱 중요한 의미와 교훈에 관한 분석에는
미흡한 점이 없지 않다.

현대측의 주장처럼 유상증자를 원활하게 하기 위해서 많은 기업들이
주가관리를 해왔으며 이를 증권당국이 양해해온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증권회사가 주가관리라는 명목 하에 공공연하게 주식가격을 조작하는
행위는 선진국에서는 찾아볼 수 없다.

주가관리는 어떤 형태로든 경쟁질서를 무너뜨려 주식시장을 왜곡시킨다.

정보가 빈약한 소액투자자들은 피해를 볼 수밖에 없다.

주가관리 덕분에 주식가격이 올랐으므로 손해본 사람이 없다는 논리는
위험하다.

이 논리대로라면 경쟁보다는 불완전경쟁이 우월하다고 경제학이론을 다시
써야한다.

증권회사에 의한 인위적인 주가관리가 주는 폐해를 따져보자.

정치자금이라는 명분 아래 검은 돈을 수수해왔던 우리 과거 정치관행과
유사한 점이 많지 않은가.

불투명한 정치자금수수가 당장은 해당 정치인의 정치생명 유지에는 도움이
될지 모르나 장기적으로는 정치판을 흐리게 하여 정치발전을 막는 것과
비슷하다.

주가관리는 단기적으로는 기업의 자금조달을 쉽게 할지는 몰라도
장기적으로는 증권시장 발전을 저해한다.

주식시장의 투명성이 떨어져 건전한 일반투자자들이 떠나기 때문이다.

따라서 주가관리는 마땅히 철폐되어야할 악습임이 틀림없다.

이번 사건의 핵심은 통상적으로 눈 감아오던 주가관리가 갑자기 왜 지금
시점에서 중대한 위법행위로 간주되는 가이다.

재벌개혁을 가속화하기 위한 수단이라면 이 또한 위험한 발상이다.

위법행위 단속이 어떤 특정목표추구를 위한 수단으로 사용될 때에는
선택적으로 이루어 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번 주가조작문제는 과거의 관행을 참작하여 형평성을 잃지 않는 방향으로
처리돼야 한다.

앞으로는 "주가관리"라는 용어 자체가 사라질 수 있도록 엄격한 단속이
필요하다.

특히 금융기관을 소유하고 있는 산업재벌의 경우는 그룹내 거래내용에 관한
공시기준을 매우 엄격하게 할 필요가 있다.

선진국에서 산업재벌이 금융기관 소유를 꺼린다.

가장 큰 이유는 엄격한 공시제도로 인해 금융기관을 소유하면 오히려
기업경영에 지장을 초래하기 때문이다.

지난 주초의 대한생명 감자 명령절차에 대한 법원의 위법판결은 시장경제
질서 확립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그 의미가 매우 크다.

법원은 금감위가 행정처분을 내리기에 앞서 당사자에게 사전통지나 의견제출
기회를 주지 않은 것은 절차상 위법이라는 판결을 내렸다.

아무리 금융개혁이 중요하고 부실 금융기관 퇴출이 시급히 요구되더라도
행정적인 절차는 지켜야 한다는 것이다.

금감위 당국자는 이번 법원 판결이 감자명령 자체의 부당성을 부인한 것은
아니므로 금감위 쪽에는 큰 잘못이 없다고 한다.

금융당국은 이러한 아전인수격의 해석보다는 모든 금융감독행위에 있어서
행정절차를 엄격히 존중해야 한다.

사실이지 은행 투신 등 우리 금융기관이 부실화된 가장 큰 이유는 감독기관
이 절차를 무시하고 자의적으로 경영에 개입해왔기 때문이다.

절차가 존중되었다면 감독기관의 간여는 어떤 형태로든 문서로 남게 되고
따라서 부당한 간섭은 그만큼 힘들었을 것이다.

같은 맥락에서 서울은행 매각협상이 결렬된 후 외국인을 은행장으로
영입하여 첨단 경영기법을 도입하겠다는 금감위의 발상도 이해가 가지
않는다.

우리 은행들의 부실경영 책임은 경영기법 낙후보다는 정부의 부당한 간섭이
훨씬 크다.

국내 진출 외국금융기관의 책임자는 내국인도 많다.

중요한 것은 금융당국이 국내 금융기관 경영자의 권한도 존중해 주어야
한다는 점이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9월 6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