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에서 처음으로 "담배소송"이 제기됐다.

폐암 말기환자인 외항선원 김모(56)씨는 5일 "36년여 동안 담배를 피운
것이 폐암의 직접적 원인이 됐다"며 국가와 담배인삼공사를 상대로 서울지법
에 1억원의 손해배상 소송을 냈다.

김씨는 소장에서 "평소 건강관리에 신경을 써 당뇨 고혈압 폐결핵 등 흔한
성인병 한번 걸리지 않았을 정도로 건강한 체질이었다"며 "담배이외에는
폐질환의 원인을 찾을 수가 없다"고 주장했다.

이번 소송을 맡은 최재천 변호사는 "흡연의 폐해가 입증됐는데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에서는 담배 생산과 판매가 국가적 사업으로 진행되고 있다"며
"따라서 이번 소송은 흡연피해자 개인의 손해배상 차원을 넘어 담배의
해악이나 중독성에 대한 대국민적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고 국가적 차원의
구제책을 촉구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따라 미국 일본 등에 이어 국내에서도 담배와 질병간의 인과관계및
국가와 담배인삼공사 측의 배상책임 여부를 둘러싸고 치열한 법적공방이
벌어지게 됐다.

또 우리나라 성인의 흡연률이 일본(63%)이나 미국(33%)보다 높은 65%
이상에 달해 유사소송도 봇물을 이룰 전망이다.

최변호사는 국가와 담배인삼공사의 잘못을 조목 조목 열거했다.

<> 국가과실 및 책임부분 =헌법에 보장된 국민의 보건권 보장에 대한 의무를
위반한 책임을 져야 한다.

무엇보다 연간 담배 판매액(4조6천억여원)의 60%가 세금이어서 국가는
책임을 면할 수 없다.

또 적절한 흡연규제 및 예방대책을 수립하지 않은 채 지난 87년까지 담배를
전매사업으로 운영, 재정수입을 얻어 왔다.

국가는 또 소비자보호법 등에 따라 담배의 성분, 성능, 주의사항, 경고사항
등 표시기준을 마련하지 않고 방치해 왔다.

더군다나 국가는 국민의 건강권 보장 차원에서의 감독의무를 소홀히 해
왔기 때문에 책임을 져야 한다.

<> 담배인삼공사 책임부문 =담배의 해악성은 이미 학계에서 공인된 사실
이다.

따라서 위험성을 충분하게 알려야 한다.

그러나 76년에야 "건강을 위하여 지나친 흡연을 삼가자"는 빈약한 수준의
경고문구가 등장했다.

폐암에 대한 경구문구는 지난 89년에 부착돼기 시작했다.

따라서 89년 이전까지는 담배의 유해성을 철저하게 은폐해 왔다고 볼 수
있다.

담배인삼공사는 지금까지 담배 신상품 등을 개발하면서 담배의 위험성이나
문제점 등에 대한 정보를 고의적으로 은폐해 왔다.

<> 국내 담배소송의 한계 =첫 소송이 제기되기는 했지만 앞길은 험난하다.

우리나라는 미국과 달리 제조물책임법이 아직 만들어져 있지 않다.

미국의 경우 오랜 담배소송 역사에서 제조자의 설명의무, 엄격한 책임보상의
법리, 제조물책임법 등이 확립돼 왔다.

반면 우리나라는 법리와 판례가 전무하다.

담배로 인한 피해를 입증하는 책임도 피해자에게 있다.

더구나 담배가 전매사업으로 운영돼 온 데다 내부자 고발제도가 없어 담배의
해독성 등 자료수집도 어려운 실정이다.

< 손성태 기자 mrhand@ >

[ 외국사례 ]

미국에서는 46년전인 지난 53년 첫 담배 소송이 제기됐다.

첫 소송은 폐암환자가 냈다.

이 소송은 원고패소로 끝났다.

그러나 담배의 유해성에 대해 미국사회에 엄청난 파문을 남겼다.

66년에 "연방 담배표시 및 광고법"이 제정됐고 텔레비전과 라디오 광고 등이
중단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당시 재판부는 "담배와 폐암사이의 인과관계는 인정되지만 원고측이 흡연에
따른 폐해를 알고 있었다"며 청구를 기각했다.

첫 소송 이후 유사소송이 잇달았다.

한 주정부는 담배회사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 담배관련 질환으로 지출된
의료보험 손배배상을 받아냈다.

또 개인흡연자는 물론 간접흡연자까지 소송에 동참,담배회사들은 아예 소송
비용이나 배상액 등을 따로 적립해 놓기 시작했다.

최근 미국 마이애미 법원은 흡연자들의 집단소송에서 "흡연이 폐암 등
질환의 직접적 원인이 됐고 담배회사들이 해독성에 대한 증거를 감춰왔다"며
원고승소 판결을 내렸다.

원고측 변호사들은 담배회사들의 보상금 액수가 무려 2천억달러에 이를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이 밖에 일본 프랑스 스페인 등의 국가에서도 최근 담배소송이 잇따라
제기되고 있으나 아직 승소기록은 없다.

과테말라 등 중남미 6개국가가 미국 담배회사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 계류중이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9월 6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