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개혁은 결코 개혁 그 자체가 목적이 돼서는 안된다. 정부가 나서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시장에 맡겨야 한다. 재벌개혁에 앞서 먼저 국가가
나아갈 목표를 분명히 해야 한다. 재벌을 부정하면 한국경제는 무너진다"

일본의 저명한 경제평론가로 현재 미국 UCLA교수인 오마에 겐이치(56)씨는
한국정부의 재벌개혁을 신랄하게 비판했다.

그는 심지어 "김대중대통령이 경제를 잘 모르는 것 같다"고 꼬집으면서
미국의 요구대로 따라가는 개혁은 결코 성공할수 없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도쿄시내 그의 사무실 오마에 앤드 어소시에츠에서 그를 31일 만났다.

[ 만난 사람 = 김경식 도쿄특파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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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주간지 사피오에 기고한 "한국이 경제적으로 일어설수 없는 이유"
라는 칼럼이 한국에서 큰 화제가 됐다.

"한국에서의 반응을 잘 알고 있다.

인터넷을 통해서도 여러가지 이야기가 들어오고 있다.

정권 출범후 2년간은 아무도 나쁜 얘기를 하기 어렵다.

그러나 마지막 2년간은 누구라도 함부로 얘기한다.

이것은 잘못된 것이다.

대통령이라도 잘못한 것은 있다면 잘못했다고 말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다.

김영삼 전대통령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금융실명제등 30여년간 야당생활을 하면서 느꼈던 문제들을 반년만에
해결했다.

그러나 아무도 반대의견을 내놓지 않았다.

국민들이 토론해야 할 상황인데도 신문도 학자도 처음 2년간은 듣기만 한다.

이것이 문제다"

-한국경제위기의 원인이 어디에 있다고 생각하는가.

"한국은 달러당 80엔대의 엔고가 일어났을때 개혁을 했어야 했다.

한국은 엔고에 따른 수출경쟁력제고에 힘입어 외화를 벌어들였다.

여기에다 미국은행으로부터 빌린 돈까지 합쳐 해외로 나갔다.

한국은 생산성제고와 이노베이션을 위한 재투자를 외면했다.

재벌의 대부분은 미국으로 부터 빌린 돈으로 브라질 동유럽 인도 미얀마
베트남 중국으로 달려갔다.

정작 한국에는 재투자하지 않았다.

노동조합은 더이상 필요하지 않다며 한국을 떠났다.

재벌이 한국을 등진게 바로 한국금융위기의 원인이다.

재벌의 한국이탈은 김영삼 전대통령때 일어났다.

브라질방문때 재벌을 몽땅 데리고가 현지투자를 하겠다고 선언했다.

선진국대통령처럼 행동했다.

엉터리였다.

외국을 도우기에 앞서 우선 국내경제를 다시 일으켜 세웠어야 했다.

재벌들이 외국으로 몰려나갔다.

게다가 외국으로 부터 엄청난 돈을 빌렸다.

브라질 동구에 투자를 한 이유는 무엇인가.

지난 15년동안 한국에서 해오던 것을 브라질이나동구에서 하면 그대로
통했다.

"이지 고잉(Easy going)"이다.

어제와 마찬가지로 하면 된다는 식이었다.

음악으로 치면 앙콜로 같은 노래를 부르는 것과 같다.

한국경영자들은 이처럼 쉬운 방법을 택했다.

따라서 한국에는 돈이 바닥이 나버렸다.

노동자들이 반발하고 나섰다.

이로인해 금융위기가 발생했다"

-이대로는 한국의 근본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근본문제란 도대체 무엇인가.

"한국은 자신들의 강점과 약점을 모르고 있다.

강점은 자신들이 스스로 만들지 않으면 안된다.

그러나 지금까지는 전부 빌린 것뿐이다.

기본적으로는 일본을 배울 것인가, 미국을 배울 것인가를 언제나 얘기한다.

일본을 따라서 조선 철강 가전 자동차 반도체등을 만들었다.

그러나 현재 일본은정체상태여서 배울게 없으므로 미국을 배워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일본이나 미국으로부터 배운다는 것은 안된다.

자신들이 갈 방향을 찾아내 역할을 맡아야 한다.

싱가포르의 경우 나라는 작지만 아시아의 수도가 되겠다며 서비스산업을
특화하고 있다.

말레이시아는 정보통신산업에 치중하고 있다.

대만은 "거대한 홍콩"을 겨냥하고 있다.

자신의 나라가 무엇을 겨냥하는가를 우선 명확히 해야한다"

-목표를 설정하는데 재벌개혁은 불가피하지 않은가.

"재벌 개혁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두가지 중요한 점이 있다.

지금 한국에는 재벌밖에 없다.

재벌을 빼고나면 무엇이 남는가.

재벌을 부정하면 한국은 없어지고 만다.

현재 재벌을 어떻게 할것인가 생각하지 말고 어떤 나라가 될것인가를 먼저
결정해야 한다.

그런다음 재벌이 걸림돌이 되는가 아니면 나름대로의 역할이 있는가를
체크해야 한다.

걸림돌이 된다면 한국의 젊은이들에게 돈이 돌아가도록 해야한다고 본다.

일본에서도 젊은사람들에게 돈을 지원하는 제도를 실시하고 있다.

어떤 나라가 될 것인가를 확실히한다면 재벌을 어떻게 할것인지도 알수있게
된다"

-IMF의 처방에 대해서도 비판적인데.

"IMF가 내린 처방은 재벌해체 시장개방등 종전부터 한국의 문제점으로
지적돼온 것들이다.

그러나 이는 적절치않은 것으로 본다.

현재의 체제가 붕괴되고난 다음 이를 대체할 체제가 자리잡을 때까지는
10년이 걸린다.

어느나라라도 마찬가지다.

기존 체제는 1년만에라도 무너뜨릴 수있지만 그후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를
궁리해야 한다.

정부가 IMF의 권고나 미국의 주장을 그대로 받아들일 경우 10년은 걸려야
회생할 수있다는 각오를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실업이 늘어나고 경제의 근간이 무너지며 국력이 쇠퇴해진다.

재벌해체는 프로세서에 따라서 이뤄져야 한다.

처음부터 약속할 성질의 것이 아니다"

-재벌을 너무 옹호하는 것 아닌가.

"한국에서는 재벌이라면 무조건 좋지않은 것으로 인식되고 있다.

그러나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정치가들이 재벌로부터 여러가지 혜택을 입고 그 댓가로 도움을 준다.

특정재벌에 자동차라든가 금융분야진출을 허용해준다.

최근에는 정부가 반도체 자동차사업등을 정리했다.

말도 안되는 얘기다.

정부는 경제를 모른다.

경영은 더더욱 모른다.

재벌은 사업통폐합에서 유리하도록 정치가들에게 돈을 뿌릴것이다.

일견 미국이나 IMF의새로운 처방을 받아들이면서 실제로는 청와대의
영향력이 엄청나게 커졌다.

재벌이 살아남기 위해 청와대의 눈치를 살피게 됐다.

재벌을 죽이려면 경쟁으로 죽여야 한다.

정치가가 끼어들면 판단에 문제가 생긴다.

일본에서도 경쟁에서 살아남은 기업은 튼튼하지만 정부가 도와줘서 강한
기업이 된 곳은 없다.

경쟁에서 이겨야 강한 기업이 된다.

일본에서도 정부가 개입한 산업은 엉망이 됐다.

오히려 전자등 정부가 관심을 가지지 않았던 산업은 성공했다"

-재벌개혁의 바람직한 방향은 어떤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개혁을 달성하기 위한 처방은 무엇인가.

"재벌개혁이란 마지막으로 실시하면 된다.

인가라든가 특별한 배려를 하는 것은 안된다.

재벌을 죽이는 곳이 정부가 돼서는 안된다.

IMF가 돼서도 안된다.

현재 한국경제의 절반은 재벌이 차지하고 있다.

또한 우수한 인력을 대부분 확보하고 있다.

인재 돈 기술 경영을 재벌들이 갖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갑자기 재벌이 무너지면 어떻게 되는가.

남아있는 것 가운데 강한 것이 없다.

적어도 새로운 산업이 탄생할수 있도록 정부가 인가를 하지않고 규제도
하지않아야 한다.

젊은사람들이 사업을 할수 있도록 돈을 지원해야 한다.

미국의 실리콘밸리가 가보면 한국인들이 새로운 회사를 계속 설립하고 있다.

한국인이 할수 없는게 아니라 한국에서 할수 없을뿐이다.

실리콘밸리나 MIT등에서 활약하고 있는 한국인을 보면 창의력이 없는게
아니다.

그러나 한국은 창의력이 없다.

나라가 틀렸다는 의미다.

한국인에게는 문제가 없다.

한국의 시스템이 문제다.

한국에서는 한가지 사업에 성공하면 정치의 도움을 다른쪽으로 확장한다.

정부의 인허가과정에서 금방 재벌이 된다.

한국에서는 세계적으로 성공한 사업이 없다.

30개 거대재벌이 있지만 한가지 분야에서 세계1위가 되지 못했다.

조금씩 단계적으로 개방을 해가면서 한가지 산업에서라도 세계1위를
만들어내야 한다.

이것이 바로 새로운 가치관이다.

이렇게되면 일본이나 미국과도 경쟁할수 있다.

경쟁력없는 재벌도 결국 망하게 될것이다.

경쟁에 의해서 재벌이 정리되는 것이다.

재벌해체는 결과라야 한다.

목적이 돼서는 안된다"

-한국이 점진적으로 시장을 개방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국정부는 외자유치에 혼신의 힘을 쏟고있다.

최근 은행등 몇가지 외자유치 사례도 나타나고 있다.

현정부의 개방정책을 어떻게 평가하는가.

"시장개방은 바람직하다.

재벌들이 계열사를 팔기 위해 내놓았다.

외자가 들어오고 있다.

그러나 한국기업 가운데 외국인이 경영할수 있는 곳은 한군데도 없다.

외국인 경영은 무리라고 생각한다.

미국기업이 한국회사를 매수할 수는 있다.

그러나 한국노동자와 같이 일하면서 기업을 경영할수 있는 사람은 없다고
생각한다.

미국인이 일본이나 한국에서 성공한 사례가 없다.

한국은 세계에서 사업하기 가장 어려운 나라중 하나다"

< kimks@dc4.so-net.ne.jp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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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마에 누구인가 ]

오마에 겐이치는 저명한 경영컨설턴트이자 일본의 대표적인 경제평론가이다.

글로벌한 관점과 대담한 발상을 바탕으로 한 평론으로 명성이 높다.

원자력 공학박사 출신인 그는 매킨지에 입사하면서 기업과 경제를 보는
식견을 익혔다.

매킨지저팬의 회장으로 일하는 동안에는 "오마에 회장이 있는 맥킨지"로
불릴 정도였다.

일본 국내정치에도 강한 불만을 표출해왔던 92년 "헤이세이유신의 모임"을
창설했다.

이어 95년에는 도쿄 도지사선거에 출마했으나 낙선했다.

43년생으로 일본 와세다대 공학부를 졸업하고 미국 MIT에서 원자력공학박사
학위를 땄다.

지난 72년 매킨지에 입사했다.

영국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에 의해 "세계 사상적 지도자 4인"에 선정
되기도 했다.

지금은 미국 UCLA교수및 스탠퍼드대 객원교수로 일하고 있다.

외환위기가 닥치기 몇 달전인 97년 10월 방한, 한국경제신문과 특별인터뷰를
가졌던 그는 "한국경제의 문제는 대기업이 아니다. 대기업은 충분히 성장했다
중요한 것은 경쟁력있는 중소기업과 SOHO(Small Office Home Office)를
키우는 일이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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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마에 겐이치 주장요지 ]

<> 정부가 나서서 재벌을 해체하면 안된다. 재벌개혁은 개혁자체가
목적이어서는 안된다.

<> 한국은 겉모양만 미국화되고 근본문제는 해결된게 없다.

<> 한국은 미국이나 일본이 내놓은 것이 아닌 스스로의 위기 해결책을
가져야 한다.

<> 한국엔 장기산업정책을 진지하게 생각하는 지도자가 없다.

<> 일본과 정면승부해 살아남을 기업도 없다.

<> 정보화 사회로 이행하려해도 수학과 영어 실력이 부족하다.

<> IMF권고대로 시장개방에 착수하면 한국의 산업은 궤멸한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9월 1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