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규제의 정당성은 이제 사라졌다. 더 이상 위기가 아니기 때문이다."

말레이시아 최대 일간지인 뉴스트레이트타임즈는 30일 폴 크루그먼 교수의
진단을 크게 실었다.

신문은 또 "경제가 나아졌다고 성급하게 기뻐해선 안된다"는 마하티르
총리의 지적도 보도했다.

"위기는 끝났다", "너무 들뜨지 말자"는 이런 주장은 대개의 나라에서
경제가 회복단계에 들어갈 때 등장하는 상투적인 구호들이다.

동시에 말레이시아에서는 오는 9월 1일 외국자본규제를 해제하면서 품게
되는 자신감과 경계감의 표현이다.

말레이시아는 지난 일년간 숨가쁘게 달려왔다.

출발점은 모라토리엄(지불유예선언)과 정국혼란이었다.

외국자본을 빠져 나가지 못하게 막은 것은 내용상으로 모라토리엄과
마찬가지였다.

20년동안 키워온 후계자 안와르(당시 부총리)를 어설픈 사유로 구속, 안에서
는 데모가 밖에서는 비난이 이어지는 상황이었다.

믿을 것은 마하티르의 통치력뿐이었다.

그의 결단은 항상 빠르고 강력했다.

경제는 속도는 매우 늦었지만 점차 치유돼갔다.

고정환율제(달러당 3.80링기트)로 전환하면서 수출이 회복됐으며 중앙은행은
총 9차례에 걸친 금리인하를 통해 내수경기를 부양시켰다.

외환보유고가 늘어나자 마하티르는 지난 2월 세금을 내고라도 말레이시아를
떠나겠다는 외국계 자금에 대해 문을 열었다.

외국자금의 송금(이탈)금지를 과세송금방식으로 전환한 단계적 해제조치
였다.

이는 외국자본의 유출금지란 과격한 정책에서 "완충"을 갖겠다는 의미였다.

동시에 언제라도 떠나게 될 투기자금에 대해 중과세를 한 후 서둘러
솎아내겠다는 구상이었다.

지난해 4.4분기 마이너스 7.5%를 기록했던 경제성장률(GDP성장률)은
올 1.4분기중 마이너스 1.3%로 상당히 회복됐다.

말레이시아정부는 꾸준한 경기부양으로 경기회복의 흐름이 대외의 투자자들
에게 전달될 수있도록 노력했다.

정부계기금인 EPF(종업원적립기금) 자금이 주가하락시마다 시장을 떠받쳤다.

주식시장의 상향안정(1년간 최고 160%상승)으로 하반기 들어서는 소비성향도
살아나기 시작했다.

지난 27일 발표됐던 2.4분기 GDP성장률은 마침내 5분기동안 이어진
마이너스 성장에서 벗어나 4.3%의 플러스 성장으로 돌아섰다.

6월의 광공업생산지수는 전년동월보다 8.3% 상승했으며 전기.전자업종을
중심으로 외국계제조업도 호조를 보이고 있다.

상반기 무역흑자는 1백억달러에 육박하는 규모로 역시 전년동기보다 50.6%나
늘어났다.

경제성과를 감안할 때 말레이시아는 자본규제 "해제자체"를 우려할 이유는
없다.

전문가들은 현재 콸라룸푸르 주식시장에 약 1백30억달러의 외국계 자금이
활동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이 가운데 1일이후 말레이시아를 떠날 자금은 최고 70억달러.

대다수 전문가들은 26억달러정도가 말레이시아를 이탈할 것으로 예상한다.

이 정도는 3백20억달러에 달하는 중앙은행 외환보유고를 감안할 때 우려할
금액이 아니다.

오히려 중장기적으로 외국계 자금은 유입될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최대의 호재는 MSCI(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지수에 콸라룸푸르 증시가
편입된 일이다.

이는 국제금융시장에서 유동자금을 굴리는 기관투자가에게는 포트폴리오의
지침과 같은 것이다.

내년 2월이후 MSCI지수편입이 이뤄지면 이들은 관례대로 지침을 따르게
된다.

우려해야 할 것은 "해제이후"의 개혁이다.

마하티르 총리가 경계감을 늦추지 않는 것도 여전히 불안 요소가 상존하기
때문이다.

달러당 3.8링기트의 고정환율은 링기트화의 고평가로 지적된다.

이는 내수시장의 회복과 함께 수입액이 늘면 무역수지가 다시 적자로
돌아설 수 있다는 의미가 된다.

특히 높은 수입의존도를 보이고 있는 중국계(국민의 약25%) 상공인들에게는
통화의 고평가가 불만이 아닐 수없다.

기업들도 이같은 환율정책으로 큰 타격을 입었다.

최대 자동차업체인 프로톤은 높은 부품수입가격으로 지난 3월말 결산에서
약3천만달러의 영업적자를 기록했다.

많은 경제분석가들이 한 번은 경쟁력없는 사업정리를 비롯한 구조조정이
불가피하다고 지적한다.

이는 실업문제를 야기할 게 뻔하며 내년 4월로 다가온 총선정국을 혼미하게
만들 것이다.

< 박재림 기자 tree@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8월 31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