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철환 < 한국은행 총재 >

[ 도서명 : ''진보와 보이지 않는 손-인간 발전의 철학과 경제학''
(PROGRESS AND THE INVISIBLE HAND-THE PHILOSOPHY AND
ECONOMICS OF HUMAN ADVANCE ) (Little Brown and Company
(UK), London, 1998년)
저자 : 리처드 브론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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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몽주의시대 이후 인간이 지닌 열망은 고도의 문명창조와 지적 탐구욕을
극대화하기 위한 끊임 없는 진보였다.

그리고 지금까지의 역사는 진보신념의 실현을 보장하는 최선의 길이
자유시장 주도의 경제성장이라는 것을 보여주었다.

시장을 통한 진보가 경제적 생산력을 지속적으로 높여 왔기 때문이다.

다만 최고의 물적 생산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자유시장에도 최소한의
도덕성이 필요했다.

제르미 벤덤의 최대다수의 최대행복 지향성 공리주의가 아담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자유시장)"이 지닌 반 도덕성을 상쇄하는 도덕성의 핵심사상
을 제공했다.

그 결과 계몽시대 이후 도덕성으로 무장한 "보이지 않는 손"이 2백여년
동안 전세계적 물적 생산력을 25년마다 2배씩 늘려왔고 속도를 더욱
가속시켰다.

물론 이과정에서도 도덕 및 경제위기는 반복되었으나 기술, 생산, 교역,
금융, 증시 등으로만 보면 경제적 진보에 대한 의문을 지닐 이유가 없다.

그러나 근대 초기에 폭발했던 철학적 사유의 깊이는 경제적 성공과
반비례하였다.

물적 풍요 속에 인간이 지닌 도덕성과 상상력이 함몰되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자유시장주도의 경제발전 신념이 지속될 수 있는가에 대한 의문이
야기되기 시작했다.

그런 사람 중 하나가 철학자이며 런던 금융가의 이코노미스트인리차드
브론크(Richard Bronk)이다.

그의 저서 "진보와 보이지 않는 손-인간 발전의 철학과 경제학(PROGRESS
AND THE INVISIBLE HAND-THE PHILOSOPHY AND ECONOMICS OF HUMAN ADVANCE )"(
Little Brown and Company(UK), London, 1998년)에서 주류 경제학자와 달리
인간에 대한 깊은 고뇌의 흔적을 볼 수 있다.

브론크는 우리의 생활상을 철저하게 바꿔 놓고 있는 기술혁신과 성장이
불가능하다고 보지는 않는다.

그러나 서구문명이 인간의 삶에 적합하게 정의된 "인간 진보" 조건을
충족하기에는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그 논거는 복지와 성장간의 관계가 수년전 보다 악화되었고, 복지를
악화시키는 경제의 외생 요인이 격증하는 데 근거하고 있다.

그것은 우리가 지니고 있는 환상적인 기술 낙관론(Techno-optimism)이
지닌 반도덕성에 대한 도전이기 때문에 단순히 사상의 유행에 그칠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브론크는 문명발전의 동력인 기술혁신이 인간발전과 궤도를 같이 할 것인가
에 대해서는 의문을 지니지만 기술혁신 불가능성을 예상하는 것은 아니다.

반대로 미국형 자유시장주의가 보이지 않는 손에 도덕성을 부여했던
"최대다수 최대행복 추구의 공리주의 실현"을 충족할 수 없다고 비판한다.

첫째로 진보주의의 자유시장학파는 소득분배개선 지향성보다 개인의 자유와
비독재성 분권주의 때문에 지배사상이 되었다.

지금은 오히려 그 부작용이 매우 커서 분배개선이 중요한 세계적 과제로
되고 있다.

둘째로 시장은 보통 사회경제적 오류를 시정하고 일반균형을 유지시킬
수 있는 것으로 인식된다.

그러나 현실은 시장이 모든 오류를 시정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해 주지
못하는 데다가 때로는 정부실패보다 더 큰 역사적 오류를 야기할 수 있다는
우려도 크다.

셋째로 시장이 효율과 오류시정기능을 지닌다고 해도, 시장이 보상할
수 있는 자유는 보편적 계약제와 성공과실의 일방적 소유집중을 야기하여
삶의 불안정과 형평에 대한 저항을 불러 일으킨다.

따라서 개인의 자유와 복지간의 결과적 상충성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브론크는 이런 이유로 시장이 지배하는 현대사회를 고뇌철학 없는 시대로
규정한다.

인간 발전지향의 사유철학시대로 회귀할 것을 바란다.

인간 발전의 사회경제적 관점에서 보면 1)사람을 해고시키는 경영자
2)시장을 신격화하는 정치.관료.언론인의 사회인식 3)평가만을 효율보장
수단으로 인식하는 평가만능주의에 대한 반성일지도 모른다.

필자는 "비록 보이지는 않지만 시장의 의지가 신의 의지일 수 있을까?"
없다면, "신의 얼굴을 지닌 시장보다 인간의 얼굴을 지닌 시장을 구축하면서
도 효율과 인간발전을 보장할 수 있는 지혜는 없는 것일까"를 반문해 본다.

그것이 끊임없이 현실 사회경제를 개선.발전하게 하는 길이기 때문이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8월 26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