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리콘 밸리 벤처기업들의 창업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다.

창업 멤버들간의 돈독한 우정을 바탕으로 차고를 개조한 아지트에서 일궈진
야후같은 기업을 "1세대 인터넷 기업"이라면 요즘 새로 문을 여는 업체들은
"2세대"라고 부를 만하다.

2세대는 인터넷 비즈니스에 정통한 전문가들이 짧은 기간에 자금을
대량으로 끌어들여 세운다는 점에서 1세대와는 확연하게 구분된다.

최근엔 수천만달러짜리 스톡옵션을 포기하고 다니던 회사를 뛰쳐나온 젊은
인터넷 전문가 6명이 단 12주만에 인터넷 기업을 출범시켜 실리콘 밸리를
놀라게 했다.

이름난 창업투자 회사들이 이 젊은이들에게 단숨에 8백만달러를 모아준
일도 화제가 됐다.

이들이 차린 회사는 이피니언스 닷 컴(epinions.com).

인터넷을 통해 소비자들이 상품 정보를 교환할 수 있게 하는 일종의
정보마당겸 전자상거래 사이트다.

창업멤버들은 야후에서 1천만달러 스톡옵션을 보장받았던 니라브 톨리아(27)
와 @home에서 4백만달러가 넘는 스톡옵션을 떨치고 나온 나말 라비칸트(25)
등 쟁쟁한 인터넷 비즈니스 베테랑들이다.

인터넷 결제 시스템업체인 e차지 닷 컴(eCharge.com)의 경우는 전 에그헤드
(Egghead.com) 회장인 로널드 에릭슨을 회장으로 영입했다.

전자상거래및 금융 전문가들이 모여 창업한 이 회사는 최근 마이크로소프트
AT&T 케이블&와이어리스를 비롯한 유명기업들과 잇달아 전략적 제휴를
맺으면서 시장에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인터넷 창업의 신조류를 몰고가는 또다른 주자는 리스판드 닷 컴
(respond.com).

지난 7월에 인터넷 경매 사이트를 시작한 이 회사는 물건을 파는 쪽이
아니라 살 사람들이 주문을 내는 "역 e베이"로 알려져 있다.

이 회사의 최고경영자도 "어드밴트 소프트"라는 회사 출신의 정보통신
분야의 베테랑이다.

리스판드 닷 컴 역시 단 몇달만에 1천2백50만달러를 창업자금으로 모아
화제가 됐다.

최근 자금을 댄 인물중 한명은 전 넷스케이프 회장인 짐 바크데일.

그는 자신의 벤처캐피털 회사를 차린 후 유망한 인터넷 벤처기업에 투자하고
있다.

이들이 이처럼 짧은 기간에 창업을 할 수 있었던 것은 무엇보다 성공에
대한 강한 확신이다.

1세대 창업은 인터넷의 미래가 불투명한 상황에서 이뤄졌다.

하지만 2세대는 선배 세대의 성공을 눈으로 봤다.

될성 부른 아이디어가 있다면 서슴치 않고 뛰어드는 데는 확신이 깔려 있다.

인터넷 기업을 어떻게 꾸려가는지 충분히 배웠다는 것도 이들이 가진
장점이다.

자금이 뒷받침되는 것도 추진력을 더해준다.

창업투자 회사들이 1세대 때보다 과감하게 인터넷 기업에 투자하고 있는
것이다.

이들 역시 인터넷 기업에 투자해 엄청난 수익을 올린 경험이 있어서다.

이피니언스의 경우 석달이 채 안 되는 짧은 기간에 출범했지만 자신감은
대단하다.

인터넷을 통해 상품정보를 제공하는 서비스는 아마존 등 다른 인터넷
사이트도 이미 하고 있다.

하지만 이피니언스는 상품 정보 제공 서비스만을 전문적으로 하는 데 승부를
걸었다.

이들의 무기는 소비자의 신뢰다.

기존 전자상거래 사이트의 경우 제조업체나 판매업체가 상품정보를
소비자들에게 제공한다.

이에 비해 이 사이트는 같은 입장에 선 소비자들끼리 상품 정보를
교환하도록 해 신뢰를 얻는다는 전략으로 밀고 나간다.

누구나 상품에 대한 평가및 정보를 이 사이트에 게재할 수 있고 그 내용을
다른 사람이 읽을 때마다 돈을 받는다.

올라온 정보의 유용성에 대해선 소비자들이 직접 등급을 매긴다.

기존 전자상거래 사이트가 물건을 파는 공간이라면 이피니언스는 아이디어와
상품정보가 매매되는 공간인 셈이다.

< 고성연 기자 amazingk@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8월 24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