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동성 < 서울대교수 / 국제지역원장 >

해외 도시를 다녀보면 일본 자동차가 길거리를 휩쓸고 다니는 모습을 수없이
보게 된다.

그러나 외국 도시에는 그렇게 널려 있는 일본자동차가 서울거리에서는 눈을
씻고 봐도 안 보인다.

이를 한국자동차 산업이 경쟁력이 있기 때문이라고 해석한다면 큰 착각이다.

그 이유는 한국 정부가 일본제품의 수입억제를 타깃으로 하는 수입선 다변화
정책을 채택해왔기 때문이다.

한국정부는 지난 7월1일부터 수입선 다변화정책을 폐기했다.

이제 품질과 가격면에서 막강한 경쟁력을 가진 일본상품이 한국시장으로
진출하기 위한 필요조건이 갖추어진 셈이다.

이 정책변화는 앞으로 두 나라 경제에 어떤 결과를 가져올 것인가.

지금까지 한국과 일본은 이웃 나라인데도 경제교류면에서 제약이 많았다.

이러한 제약이 없었다면 두 나라 경제는 지금과 달리 보완적인 모습을
가졌을 것이다.

물론 그 과정에서 경제력이 약한 한국 경제는 일본 경제에 종속될 가능성도
충분히 있었다.

이를 회피하기 위해 한국은 두 나라 사이에 비관세 장벽과 같은 제도를
만드는 한편, 일본을 모델로 삼아 보완적인 관계보다는 비슷한 모습, 즉
경쟁적인 관계로 발전해 왔다.

이번의 정책변화는 앞으로 한국과 일본 경제에 커다란 변화를 가져올
가능성이 크다.

한국과 일본은 경제력면에서 1대10정도의 차이가 있다.

따라서 정책변화는 일본경제보다 한국경제에 훨씬 더 큰 충격을 줄 것이다.

이러한 충격은 부정적 긍정적인 면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

부정적인 면은 한국기업보다 규모도 크고 경쟁력도 강한 일본기업이 한국
시장을 빼앗고 내수에만 의존하고 있던 한국기업을 도산시킬 수도 있다는
점이다.

긍정적인 면은 일본기업이 다루기 어려운 틈새시장, 조립형 일본기업에
대한 부품 공급, 제조형 일본산업에 대한 서비스 제공 등 한국기업이 일본
기업에 보완적인 새로운 모습으로 변화할 경우 정부의 그늘 속에서 안주해
오던 구각을 떨쳐내고 본격적인 경쟁력을 가질 수 있게 되리라는 점이다.

부정적 긍정적인 면 중 어느 편이 현실로 나타날 것인가는 한국기업이 자기
변신을 위한 노력을 얼마나 열심히 하는가에 달려있다.

아마도 대부분 재벌그룹 계열기업인 조립형 제조기업들은 변신에 어려움을
겪을 것이고 그 과정에서 몰락하는 기업들이 여러 개 있을 것이다.

반면에 중소.벤처기업들 중에는 이번의 정책변화를 도약의 계기로 삼아
크게 성장하는 회사가 다수 나타날 것이다.

일본은 한국만큼 큰 변화를 겪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일본도 유의할 점이 있다.

한국을 제품시장으로만 보지 말고 전 세계를 향한 아시아의 경쟁력을
제고하는데 파트너로 삼아야 한다는 점이다.

그동안 일본은 기술이전 정책에 있어서 미국과 극히 대조적인 모습을
보여왔다.

미국은 여러 개의 폭포로 구성된 천제연 같은 "다단계 폭포형" 기술이전
정책을 써왔다.

즉 미국은 기존의 기술을 미국보다 한단계 수준이 낮은 일본으로 끊임없이
이전하면서 자신은 새로운 기술을 기반으로 한 첨단 분야로 계속 진출한
것이다.

그리고 유럽과 일본도 마찬가지로 한국 대만 등 그 다음 수준에 있는 나라로
기술이전하기를 기대했다.

그러나 일본은 미국과 달리 "순차 이주형" 기술이전 정책을 채택해 왔다.

처음에는 기존기술을 한국과 대만에 주었지만 소위 부메랑 효과, 즉 이들
국가가 위협적인 경쟁자가 되는 것을 겁내고는 기술이전 대상국을 태국
말레이시아로 바꾼 것이다.

그리고 이들이 다시 경쟁자로 올라오면 인도네시아 베트남 등으로 기술이전
대상국을 순차적으로 바꾸는 정책을 써왔다.

이러한 일본의 기술이전 정책은 적어도 단기적으로는 효과를 보았다.

미국은 일본이라는 호랑이 새끼를 경쟁자로 키운 반면, 일본은 대부분의
산업에서 한국과 대만의 도전을 성공적으로 막아냈다.

그러나 장기적으로 볼 때 미국은 일본의 도전을 극복하기 위해 처절한
노력을 한 끝에 이제는 일본이 도저히 따라잡을 수 없는 경쟁력을 구축한
반면, 일본은 아시아에서 도전자가 없는 위치를 구축했음에도 불구하고
미국과의 경쟁에서 밀려나고 있다.

이제라도 일본은 한국과 대만을 경쟁자로 키워 이들과의 건전한 경쟁력을
통해 새로 태어나야 한다.

한국은 바보가 아니다.

일본이 한국을 시장으로만 이해한다면 한국은 곧 일본에 대해서 실망하고
돌아설 것이다.

순망치한이라는 표현이 한.일 관계에서보다 더 적절하게 쓰일 수가 있을까.

한국과 일본은 서로의 밀접한 관계를 깊이 인식하고 한국의 수입다변화정책
포기를 계기로 21세기 아시아의 경쟁력을 갖추기 위한 경쟁자 협력자, 그리고
동반자로서의 위상을 정립해야 한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7월 22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