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년대 들어 세계교역규모가 커지고 거래상대국이 확대됨에 따라 거래방식
에 있어서도 기존의 몇몇 정형화된 유형으로부터 벗어나고 있다.

특히 95년 1월 세계무역기구(WTO) 출범을 계기로 반덤핑(anti-dumping),
긴급수입제한조치(safeguard) 등의 남용을 방지하기 위한 장치가 도입되고
모든 회원국들에게 수출입 절차를 개선해 수출입 제한기능을 억제토록
요구함에 따라 국제무역거래방식의 다양화 추세가 급진전되고 있다.

우리나라도 이러한 추세에 맞춰 그 동안 대외거래와 관련된 각종 법령이
정비되고 국내기업들의 해외진출이 꾸준히 증대되면서 거래방식이 크게
변하고 있다.

이중 수출대금결제에 있어서는 기존의 신용장(L/C) 방식보다는 추심이나
송금에 의한 방식이 빠르게 늘어나고 있다.

수출대금결제별 비중을 보면 90년대 중반부터 L/C 비중이 처음으로 50%
이하로 떨어진 이후 이 비중이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반면 추심이나 송금에 의한 결제비중은 각각 25%, 15% 수준까지 상승하고
있다.

앞으로 세계 각국의 상이한 제도나 기준을 통일시켜 공정한 경쟁기반
(level playing field)을 만들기 위한 밀레니엄 라운드가 구체화되고,
인터넷을 활용한 사이버 무역이 활성화될 경우 대내외적으로 무역거래방식의
다양화 추세는 더욱 급진전될 것으로 예상된다.

따라서 과거 L/C에 의해 주로 수출이 이루어지던 시기에는 L/C 내도액을
통해 앞으로 수출이 어떻게 될 것인가를 가늠해 볼 수 있었으나 이제는
이러한 점이 의심스러워 졌다.

수출선행변수로서 L/C 내도액의 기능이 갈수록 떨어지고 있다는 의미다.

통상적으로 시계열 변수간의 선행 및 후행관계를 파악하는 데에는 교차상관
계수가 이용되고 있다.

이 계수를 통해 L/C 내도액과 수출과의 관계를 보면 80년대에는 L/C 내도액
이 수출에 대해 약 3개월의 시차를 두고 선행한 것으로 나타났으나 90년대
들어서는 그 시차가 6개월로 늦어지면서 선행정도도 크게 떨어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현재 정책당국에서는 수출선행변수로 여전히 L/C 내도액을 활용하고 있다.

각종 수출목표를 세울 때에도 L/C 내도액을 중요한 지표로 삼고 있으나
최근처럼 수출선행성이 떨어지는 상황에서는 L/C 내도액을 이용한 수출전망은
그만큼 빗나갈 가능성이 높아졌고 실제로 이런 현상이 자주 발생되고 있다.

그러면 앞으로 우리나라 수출을 가늠해 볼 수 있는 새로운 수출선행변수로는
어떤 것이 적당한가.

여러 가지 변수를 시뮬레이션한 결과 엔.달러 환율이 L/C 내도액보다 수출
선행성이 뛰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즉 80년대 이후 지난해까지 엔.달러 환율의 수출선행정도(QPS값)는 0.057로
같은 기간중 L/C 내도액의 0.017에 비해 3배 이상 높게 나타났다.

추정기간을 좀 더 세분화해서 분석해 보면 시간이 갈수록 엔.달러 환율이
L/C 내도액보다 수출선행정도가 높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정책당국이든 기업이든 간에 향후 수출을 가늠하는데 있어서는 기존의
L/C 내도액 보다는 엔.달러 환율의 움직임을 예의 주시해야 함을 시사해
주는 것이다.

물론 최근 들어 엔.달러 환율의 수출선행정도가 높아지고 있는 것은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 우리 상품과 일본상품과의 수출경합관계가 높아지고 있는 반면
품질, 디자인과 같은 가격 이외의 경쟁력을 갖추지 못함에 따라 수출이
지나치게 환율에 의존하는 구조를 들 수 있다.

극단적으로 우리나라의 수출구조를 엔.달러 환율에 의존하는 천수답이라고
표현하는 사람도 있다.

우리나라 외환제도도 커다란 원인이 되고 있다.

그동안 미 달러화를 제외한 이국통화 환율은 재정환율로 결정돼 왔다.

물론 원.엔 환율은 97년 10월 이후부터 직거래 시장을 통해 결정토록 되어
있으나 최근까지 활성화되지 못함에 따라 실질적으로 재정환율과 거의
비슷한 수준에서 결정되고 있다.

여기에 국내기업들이 환위험 관리기법이나 환위험 관리경험이 일천하기
때문에 국제외환시장에서 결정된 엔.달러 환율에 종속돼서 수출을 하기
때문이다.

이같은 결과는 정책당국에게 두가지 과제를 던져주고 있다.

하나는 수출선행변수로서 더 이상 L/C 내도액을 고집하지 말고 엔.달러
환율과 같은 새로운 변수를 활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최근처럼 정부의 수출목표가 자주 빗나가다 보면 정책의 신뢰성 상실문제
뿐만 아니라 기업들이 사업계획을 수립하는데 많은 어려움을 초래할 것이다.

다른 하나는 우리 수출구조를 시급히 가격경쟁력에서 의존하는 구조에서
탈피할 수 있도록 모든 정책역량이 모아져야 한다.

외환제도도 원.엔 직거래 시장이 활성화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외환시장의
하부기능을 확충해 기업들이 환율변동에 따른 위험을 체계적으로 방지할 수
있는 제도적인 여건을 마련해야 한다.

그래야 우리 수출이 엔.달러 환율에 종속되는 구조에서 탈피할 수 있으며
우리 경제의 정체성(identity)과 안정성(stability)을 찾는 계기가 될
것이다.

한상춘 < 전문위원 schan@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7월 22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