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사정권 시절 우리 정치에서 말은 부차적인 것이었다.

권력의 실체는 말이 아니고 힘과 폭력, 그리고 물리력이었기 때문이다.

여론민주주의 아래서는 권력 실체의 중심이 "말"로 이동된다.

말은 메시지이다.

적시에 적절한 메시지가 사회적 통합을 가져온다는 점에서 말은 곧 정치다.

우리사회는 말에 대한 혐오가 있다.

"말만 번지르르하다" "말은 잘한다" "말많으면 공산당" 등 말 잘하는 사람이
갖는 부정적 이미지가 있다.

우리는 영어회화 공부는 시키면서 국어회화공부는 시키지 않는다.

학습과정에 읽기 쓰기 글짓기 과정은 있지만 토론의 기초인 논리적인
"말하기 교육"은 없다.

이런 환경이 사회지도층과 우리 국민의 말하기 수준을 저급하게 하는 요인이
되고 있다.

말에 대한 혐오, 부정적 이미지로 인해 우리정치에서의 말의 수준은 정치
토론이나 회의에서 실제적이지 못하고 지극히 형식적이고 낭비적이다.

정곡과 핵심을 찌르는 짧은 말이 어떤 회의에서나 토론에서도 중요하지만
실제 정치에서의 말은 그렇지 못하다.

대개의 경우 정치권에서 각종 회의는 춤춘다.

한국에서는 특히 그렇다.

이는 문제의 핵심에 바로 접근하지 못하고 주변과 절차사항을 맴도는 등
비능률적인 말의 문화에 기본적인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정치의 기본은 "Rule of Game"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한국정치는 게임의 법칙 대신 정글의 법칙이 지배했다.

게임의 법칙에 의해 정치가 이루어질 때 정치는 스포츠경기와 같다.

관객이 환호하고 좋은 매너와 페어플레이가 갈채를 받는다.

무법과 반칙, 폭력, 파울플레이가 난무하는 속에서 좋은 매너와 부드러운
언어는 자랄 수 없다.

순화된 정치언어는 "Rule of Game"의 바탕위에서만 가능하다.

그같은 점에서 "장기집권"과 "정권교체론"이 맞부딪히는 과거 권력정치
속에서 싹트지 못했던 페어플레이 정신이 이제는 새롭게 가능한 토양이
조성되고 있다고 본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7월 16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