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학에서는 경제활동을 하는 사람은 누구나 "최소의 비용으로 최대의
효과"를 거두려한다고 가정하고 이것을 경제원칙이라고 부르고 있다.

이 원칙의 연장이라고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으나 조직에서 일하는 사람은
누구나 "최소의 책임으로 최대의 권한"을 누리려하는 경향이 있는데 그
대표적인 예가 공직자라는 지적이 있다.

공무원들이 권한을 확대하려 하다 보면 결국 정부 부처간의 마찰이나 갈등을
유발하는 경우도 많다.

과거 재무부와 한국은행간의 몇차례에 걸친 분규는 유명한 사례이며
외국에서 비슷한 분쟁이 자주 발생한 바 있다.

YS정부때 재무부와 경제기획원이 합쳐져 생겨난 재정경제원에는 지나치게
많은 권한이 집중되어 있었다.

외국인들이 "슈퍼 미니스트리"라고 부를 정도로 경제에 관한한 경제운영에서
부터 금융 예산 국고 조세 외환 공정거래에 이르기까지 이 부처의 손이
미치지 않은 분야가 거의 없었다고 할 수 있었다.

그러나 결국은 외환위기를 제대로 예방하지 못한 책임을 지게돼 재경원은
재정경제부로 축소되었고 금융 예산 공정거래에 관한 권한들이 독립된 부처로
이관되고 말았다.

재경부안에서는 과거의 영광을 아쉬워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겠지만 최근
아시안 월스트리트저널에서도 밝힌 것처럼 "재경부의 능력에 비추어 본다면
(지금정도의) 권한과 책임이 합당한 수준"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수사권 독립을 둘러싼 검찰과 경찰간의 대립도 권한의 조정문제가 밖으로
불거져나온 케이스라고 하겠다.

권한확대나 조정이 정부부처간의 문제일 경우에는 그래도 그 폐해가 크지
않다고 할 수 있겠다.

상대부처에서 견제를 하기 때문에 곧 언론이나 국민들의 주목을 받게되어
불합리한 점들은 해소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문제는 공무원들이 민간을 대상으로 파워를 확대하고 이를 행사하고자 할
때이다.

상대적으로 힘이 약한 민간부문이 항상 밀리게 마련인 것이다.

기회만 있으면 각종 규제를 만들어 죄어오는 정부에 대해 민간이 제대로
대응하기는 극히 어려운 일이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최고통치자는 행정규제의 완화 또는 혁파를 지시하지만
권한이나 밥그릇 지키기에 도사인 공무원들이 실속있는 규제를 쉽게 풀어주지
는 않는 법이다.

이것이 결국은 기업의 창의력과 활동력,경쟁력을 떨어뜨리고 경제의 위축을
가져오게 되는 것이다.

동전의 양면이긴 하지만 권한에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공무원의 책임에 관한
문제이다.

누구나 책임지는 일을 달가워할리 없지만 정부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책임을
회피하고자 하는 성향은 특히 강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경제정책이나 인사정책이 잘못되어 부작용이나 파문이 일어나기라도 하면
스스로를 돌아보고 탓하기에 앞서 언론이나 국민들의 비협조와 무지를
비난하고 나서는 일이 많다.

따라서 문제의 본질을 고치기보다 홍보나 교육을 강화하는 쪽으로 대안을
들고 나오는 경우가 허다한 것이다.

공무원들중 책임을 제대로 지지 않으려는 사람들은 어렵거나 힘든 일은
피하거나 연기하려 든다.

소위 복지부동의 자세가 되는 것이다.

문제는 외환위기 이후 1년반이 지나면서 경제가 다소 회복돼가는 기미를
보이자 복지부동의 분위기가 확산돼 가는 듯하다는 점이다.

국가부도의 위기하에서는 일부 종금사와 은행을 폐쇄하고 행정 공기업
대기업 노사관계 등 모든 분야에서 강력하게 개혁을 밀어붙이는 등 책임감
있고 과감했던 정부의 자세가 최근에는 많이 느슨해졌다는 지적을 받고 있는
것이다.

개혁의 의지가 약화되었다는 정도가 아니라 편의상 번복이나 후퇴도
가능하다는 인상을 주기까지 하는 것이다.

개혁이 비교적 잘 되었다는 평가를 받아온 금융부문조차도 최근에는 일의
진척이 지지부진하다는 소리를 듣고 있다.

특히 제일은행과 서울은행의 해외매각은 시간이 많이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별다른 진전이 없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얼마전에는 홍콩상하이은행이 서울은행 매입을 포기할 가능성이 있다는
보도까지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대한생명의 처리 또한 난항을 거듭하고 있다.

두차례에 걸친 입찰도 무위로 끝났고 3차입찰이 진행중이나 제대로 결말이
날지 확실치 않은 상태이다.

정부일각에서는 이들 금융기관을 헐값에 매각하느니 국유화한 상태에서
해외 위탁경영을 하는게 낫다는 의견까지 나오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의견을 담당공무원들이 책임과 문제해결을 연기하기 위한
연막작전으로 보는 비판론도 대두하고 있다.

매각이 늦어지는 것이 해당 공무원들의 복지부동 때문이라고만 볼 수는
없다.

투자자들이 지나치게 헐값이나 지키기 어려운 조건을 제시하기 때문일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나 담당 공무원들이 향후의 책임문제 때문에 느낄수 있는 중압감도
무시할 수 없다.

따라서 제값을 받고 팔고자 하는 공무원들의 노력은 물론 제대로 평가되어야
하겠지만 이들이 걸머지게 될 엄청난 책임문제에 대한 배려도 있어야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그저께는 김대중 대통령이 제일 및 서울은행의 해외매각을 서둘러
매듭짓도록 재정경제부 장관에게 지시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지시의 구체적인 내용은 알지 못하지만 이처럼 큰 문제는 결국 최고
통치자가 직접 나서서 스스로 모든 책임을 진다는 점과 해결의 방향을
명확히 하여야만 해결될수 있는 것이다.

대기업들이 자산을 매각할 때도 전문경영인들만으로는 어렵고 오너가
책임있는 결정을 내려주었을 때만 가능했다는 점이 참고가 될 수 있을
것이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6월 30일자 ).